조성길 한국 못 온다는 발상
미국으로 망명한다는 인식
인도주의와 헌법 가치 외면
北 눈치 보는 외면 어불성설
미, 정보 얻고 韓 망명 권할 수도
망명자 품지 않고 통일 말하나
제3국으로 망명한 북한 외교관. 처음엔 두려웠지만, 정착에 성공했다. 그와 가족은 안전해졌다. 그 나라 정보기관에 연구원 자리도 얻었다. 고위 장교에 해당하는 월급이 나왔다. 아이들은 학교에 다녔다. 6개월이 금방 지나갔다. 마음이 안정됐지만 약간의 외로움은 느꼈다. 그러나 이곳에서 정 붙이고 살아가면 될 것 같았다.
어느 날 편지 한 통이 도착했다. 하얀 종이 두 장에 만년필로 꾹꾹 눌러쓴 글씨가 보였다. 보낸 이는 대한민국 정부 고위 인사. 한국에 와서 함께 일하고, 함께 살자고 했다. 담담한 필체였다. 그 때문에 더 마음이 움직였다.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눈물이 마르기 전에 연구원 상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잠적한 조성길 주이탈리아 북한 대사관 대사대리에 대한 보도·논평을 보면 이해할 수 없고, 현실과도 다른 흐름이 있다. 먼저, 문재인 정부가 남북 관계를 감안해 그의 한국 망명을 원치 않는다는 것. 또, 조 대사대리가 원하기 때문에 결국 미국으로 갈 것이라는 전망이다. 새삼 놀라게 된다. 이 나라의 외교 정책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심기에 따라 결정된다고 생각하는가? 또 미국은 무조건 망명 외교관을 받아줄까?
한국 정부가 조 대사대리와 그 가족의 절박한 처지를 외면한다면, 무엇보다 인도적 차원에서 정의롭지 않은 일이다. 탈북민과 북한 주민을 국민으로 여기는 헌법 정신에도 어긋난다. 그와는 별도로 북한 엘리트 계층인 조 대사대리 부부는 정보라는 측면에서도 매우 귀중한 자원이다. 김정은 일가와 관련된 인적 정보, 북한 핵 문제 등 외교 정책에 대한 기본 지침도 알고 있을 것이다.
특히, 조 대사대리는 지난 2015년 5월 로마에 부임했다.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는 북한이 5차 핵실험을 강행한 2016년 11월(무연탄 수출 제재·북 선박 입항 금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발사한 2017년 6월(석탄 수입·해외 노동자 고용 금지), 6차 핵 실험을 한 2017년 9월(유류 및 직물 수입·노동자 비자갱신 금지)을 거치며 점점 강해졌다. 북한에 사치품을 조달했던 조 대사대리는 그 기간에 북한이 어떻게 제재를 회피·우회했는지를 증언할 수 있다. 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 대사관 공사가 망명한 지도 2년 넘게 지났다. 국제사회로서는 더 새롭고, 생생한 정보가 필요한 시점이다.
미국이 조 대사대리를 꼭 미국으로 데려가려 할까? 미중앙정보국(CIA) 코리아미션센터에서 관심을 가질 만하다. 대북 제재 선봉장인 미 재무부·법무부도 그의 새로운 증언에 따라 추가적 제재 조치를 내놓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꼭 그를 미국 시민으로 만들 필요는 없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몇 해 전 유럽 국가에서 북 고위 외교관이 미국 망명을 신청했다. 주재국 정부가 미 정부 인사와의 면담을 주선했다. 미 측은 이 외교관의 주요 정보를 대부분 습득했다. 그런 뒤 “미국으로 오면 환영한다. 그러나 한국 행(行)이 더 자연스러운 선택일 수 있으니 숙고해보라”고 설득했다. 결국 이 외교관은 한국으로 왔다. 미 정부가 북한을 의식해서 망명 외교관을 거부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전 세계로부터 망명자와 난민을 받아들이는 미 정부로서는 나름대로 애로와 고려 사항이 있을 것이다. 난민을 막으려고 장벽을 쌓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야 오죽하겠는가.
미 당국자가 조 대사대리를 만났다면 면담 과정에서 꼭 필요한 정보는 다 얻었을 것이다. 미 정부는 이제 한국 정부에 조 대사대리를 받으라고 ‘권유’할 수도 있다. 그러면 문 정부는 무엇이라고 답할 것인가. 문 정부는 출범 이후 줄기차게 남북관계 개선과 평화, 통일을 말한다. 그러나 조성길 한 사람 품지 못하는 정권이라면 통일을 말할 자격도 없다. 관심이 가는 것은, 조 대사대리의 망명이 국내 언론을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는 사실이다. 좋은 신호일 수도, 반대일 수도 있다. 일단 좋은 신호로 생각하고 싶다.
앞서 소개한, 편지를 썼던 정부 고위 인사는 은퇴한 인물이다. 편지를 받은 북 외교관은 한국에 정착해 살고 있다. 아직 두 사람이 누구인지는 밝히지 않는 게 좋을 것 같다. 그러나 한국 외교의 지평을 넓히고 남북 관계에 큰 변화를 가져오는 데 기여했다고 소개할 수는 있다. 두 사람 모두 애국자다. 국가정보원과 조성길도 비슷한 길을 갈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문 정부의 정체성에 대한 일부의 의구심도 눈 녹듯 사라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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