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우 前 통일연구원장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네 번째로 중국을 방문, 8일 시진핑 주석과 정상회담을 했다고 한다. 지난해 미·북 정상회담을 전후해 세 차례 방중(訪中)한 것을 보면 이번에도 2차 미·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전략을 숙의했을 것으로 보인다. 이 자리에서 김 위원장은 ‘조선반도 비핵화’에 대한 지지를 요청했을 수 있다. 북한이 ‘북한 비핵화’라는 표현을 거부하고 ‘조선반도 비핵화’를 고수하는 것은 일정 수준의 핵 능력을 유지하는 것으로 미국과 타협하거나 핵 협상을 통해 동맹을 와해시킨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결말은 미·일의 ‘인도-태평양 전략’에 맞서기 위해 우군(友軍)이 필요한 중국도 내심 바라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한국이 원하는 ‘북한 비핵화’는 영영 신기루가 될 가능성이 상존한다. 올해 북한 신년사 역시 이런 우려를 증폭시키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발표 후 일부 우리 정부 관리들과 전문가들은 “최초의 김 위원장 육성을 통한 비핵화 언급”이라면서 환영한다고 했다. 하지만 김정은의 이번 신년사는 “조선반도의 항구적 평화를 위한 완전한 비핵화 입장은 불변”이라고 했는데, 결국 ‘조선반도 비핵화’ 주장을 반복한 것이다. 그리고 미국이 제재·압박을 고수하면 “새로운 길을 모색한다”는 경고도 잊지 않았다.

한국에 미국 전술핵이 배치된 시기에 김일성 주석은 ‘조선반도 비핵화’라는 표현으로 전술핵 철수를 요구했고, 김정일 시대에는 핵우산, 연합훈련, 전략자산 전개 등 모든 대북 위협이 먼저 제거돼야 한다는 의미로 이 용어를 애용했다.

김정은 위원장도 “조선반도 비핵화는 선대의 유훈”이라며 이 입장을 계승했다. 2013년에 제정한 북한의 ‘자위적 핵보유국 지위법’은 핵 보유를 ‘미국 적대시 정책과 핵 위협에 대한 정당한 방위수단’으로 명시했고, 지난해 신년사 역시 ‘핵 불필요’를 언급하면서도 ‘대북 위협 제거’라는 단서를 달았다. 지난해 3월 정의용 특사를 통해 밝힌 ‘핵 불필요’에도 ‘군사위협 해소와 체제안전 보장’이라는 전제가 달렸고, 판문점 선언에서도 핵 없는 한반도를 ‘공동목표’로 합의했다. 북핵만 폐기한다면 왜 공동목표라고 했겠는가? 6·12 미·북 정상회담의 공동발표문에 쓰인 영문 ‘Korean Peninsula’도 북한 사전에는 당연히 ‘조선반도’다.

신년사는 남북이 겨레의 힘을 합치면 온갖 제재와 압박을 이겨낼 수 있다면서, 평화번영을 확약한 이상 외세와의 합동 군사연습과 전략자산과 전쟁장비 반입을 불허하라고 한국 정부에 압박을 가했다. 동맹 이간이라는 종래의 대남전략을 반복하면서 한국더러 대북 제재 체제를 허무는 데 앞장서라고 주문한 것이다.

한국은 김정은 신년사에 담긴 ‘조선반도 비핵화’ 망령과 불변의 대남전략을 주목해야 한다. 이 망령이 사라지지 않는 한 미·북 정상회담이 다시 열려도 북한은 동맹 와해를 겨냥한 요구들을 반복할 것이고, 한국을 향해서도 ‘우리민족끼리’ ‘민족 자주’ ‘외세 배격’ ‘평화체제’ 등의 구호를 외치면서 동맹 이간, 대북 제재 균열, 한국 사회 분열 등을 도모할 것이다. 북한이 눈가림식 성의만 표시한 채 당당하게 미국에 ‘상응조치’를 요구하는 것은, ‘조선반도 비핵화’에 관한 한 한 발짝도 후퇴한 적이 없고 말을 바꾼 적도 없기 때문이다. 정부가 실낱같은 가능성에도 대화를 하는 건 필요하지만, 정신은 바짝 차려야 한다. “북한의 비핵화 의지가 확인됐다”는 거두절미 표현으로 신기루를 실체인 양 포장하는 것부터 그만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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