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부치지 않은 편지’의 김광석
‘좋아하는 노래가 흘러나오길 기다리며 라디오에 귀 기울이던 소년이 있었다’.(When I was young I’d listen to the radio waiting for my favorite songs). 카펜터스의 ‘예스터데이 원스 모어(Yesterday once more)’(1973)는 아련한 시절의 소리 나는 풍경화다. 음악방송은 하굣길 어귀의 작은 개울 같았다. 사려 깊은 DJ는 녹음하려는 애청자를 위해 노래 전주와 자신의 음성이 겹치지 않도록 안전거리를 확보했다.
야간통행은 금지됐지만 별은 하늘에서 자유로웠고, 밤을 잊은 젊은이들은 꿈과 음악 사이에서 수줍게 소통했다. ‘밤새 하늘에선 별들이 잔치 벌였나/어느 초라한 길목엔 버려진 달빛 고였나’(김민기 ‘새벽길’ 중). 노래를 채집하는 젊은이의 가방과 가슴 속은 사랑을 그린 악보로 그득했다. 노래로 마음을 접속하던 시절이었다. 소년도 ‘별밤’에 엽서를 보냈다. 어마어마한 경쟁률 속에 사연이 채택됐고, 전화 목소리가 전파를 탔다. 신청곡은 에벌리 브라더스의 ‘내가 할 수 있는 건 꿈일 뿐(All I have to do is dream)’ ‘그대는 내 사람/입술은 달콤하지만/밤이나 낮이나/문제는 제기랄/꿈 깨면 사라진다는 것(I can make you mine/taste your lips of wine/anytime night or day/only trouble is, gee whiz/I’m dreamin’ my life away)’.

김광석뮤지컬 ‘바람이 불어오는 곳’은 오늘도 공연 중이다. 소극장인데도 11만5000명 넘게 불러모았다. 희미하나마 내게도 연결고리가 있다. 1994년 MBC대학가요제가 시대배경인데 그때 연출자가 바로 나였다. 김광석은 ‘대학가요사’로 이름 붙여진 2부 무대에서 ‘타는 목마름으로’를 수천 관객과 함께 열창했다. 생방송 날(10월 15일) 폭우가 퍼부었는데 그 현장 사운드는 고스란히 사후음반에 실려 가을비 오는 밤마다 그를 부활시킨다.
김광석 노래 중에는 편지가 세 통 있다. 이등병의 편지, 흐린 가을하늘에 쓴 편지, 그리고 부치지 않은 편지다. 그의 23주기였던 지난주엔 애끓는 편지 한 통이 뉴스화면을 적셨다. “제 인생에서 가장 힘든 순간이었지만 선생님에게 가장 많이 배우고 성장한 시기였습니다. (중략) 이렇게 보낼 수 없는 편지를 보내게 돼 통탄할 뿐입니다. 선생님 덕분에 시들어가던 제 마음이 다시 희망을 찾았습니다.” 불의의 사고로 유명을 달리한 고 임세원 정신과의사는 환자로부터 감사편지를 많이 받았다. 20년간 모은 편지가 상자에 가득 찼다고 한다.
혹시 소중한 무언가를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내팽개친 건 아닐까. 감사는 길에 흘리고 원망만 주렁주렁 매단 채 달리는 건 아닐까. 정신을 가다듬고 겨울하늘에 편지를 띄운다. ‘잊혀져 간 꿈들을 다시 만나고파’서다. ‘나를 유혹하는 안일한 만족이 떨쳐’지길 바라서다. 까까머리 이등병은 입영열차 앞에서 ‘두 손 잡던 뜨거움’을 환기시킨다. ‘가슴 속에 무엇인가 아쉬움이 남지만/풀 한 포기 친구 얼굴 모든 것이 새롭’게 다가오던 순간. ‘이제 다시 시작이다/젊은 날의 생이여’라고 노래할 수 있으니 벅차지 아니한가. 그래도 못내 아쉽다. 김광석, 그는 ‘먼지가 되어’ 날아갔지만 우리는 ‘사랑이라는 이유로’ 그를 보내지 않았다. ‘그대 눈물 이제 곧 강물 되리니/그대 사랑 이제 곧 노래 되리니/산을 입에 물고 나는/눈물의 작은 새여/뒤돌아보지 말고/그대 잘 가라’(‘부치지 않은 편지’ 중).
아주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노래채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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