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말 서아프리카 니제르 남부 마라디 인근 바사라우아의 한 노상 학교에 모인 여성들이 알파벳 쓰기 수업을 듣고 있다. 뉴욕타임스 캡처
지난해 12월 말 서아프리카 니제르 남부 마라디 인근 바사라우아의 한 노상 학교에 모인 여성들이 알파벳 쓰기 수업을 듣고 있다. 뉴욕타임스 캡처

니제르·세네갈·나이지리아 등
이혼신청·소송 2~3배 늘어나
가나 최근 2년간 이혼재판 중
여성 청구소송이 73% 달해

교육기회 확대·의식개선 효과
미디어도“이혼, 죄 아냐”변화

경제력 떨어진 남성 권위 추락
‘지참금-딸 거래’강제결혼 여전
阿 여성권익 보호 ‘아직 먼 길’


지난해 유엔개발계획(UNDP)의 성불평등지수(GII)에서 세계 최하위를 차지한 니제르를 비롯해 최악의 여성인권 사각지대로 꼽히는 서아프리카 지역 여성들이 그동안 금기시됐던 ‘이혼’을 통해 자신에 대한 가치 찾기에 나서고 있다. 교육 수준이 높아지고 미디어 발달로 전보다 활발한 의견교류가 가능해진 데다 잦은 전쟁으로 남성들의 경제적 역할이 크게 위축되면서 남성에게 매여 있던 서아프리카 여성들의 ‘조용한 혁명’이 시작되고 있다.

7일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최근 몇 년간 서아프리카 지역에서 국가와 종교, 거주지역을 불문하고 여성들이 제기한 이혼 신청이 크게 증가하고 있다. 니제르 남부 마라디의 노변 법정의 경우 최근 들어 한 달 평균 50건 정도의 이혼 신청이 접수되고 있는데 이는 3년 전과 비교해 두 배 이상으로 증가한 수치다. 니제르뿐 아니라 인근 세네갈 다카르의 다카르 여성변호사협회에는 이혼을 원하는 여성들의 문의가 4년 전의 세 배 이상으로 많아졌다. 가나 법률구호단체 LASGA가 2016∼2017년 진행한 이혼소송도 73%가 여성들의 요청에 따라 이뤄진 것으로 나타났다. 나이지리아 역시 법정에서 이혼을 주장하는 여성들이 크게 늘었다. 전체 이혼소송 건수는 전보다 소폭 감소했지만, 과거 이혼소송이 주로 아내를 버리고 다른 여성과 결혼하려는 남성들이 제기한 소송이었던 것에 비해 최근 제기되는 이혼소송은 여성이 남편과의 결혼생활을 끝낼 것을 요구하는 추세라고 관계자들은 지적했다.

이 같은 변화는 여성들에 대한 교육기회 확대와 이에 따른 여성들의 의식 개선이 크게 작용했다고 NYT는 분석했다. 과거에 비해 많은 교육을 받고 결혼 연령도 높아진 데다 도시에서 스스로 경제활동을 하는 여성도 증가하면서 부당한 대우를 ‘감내’해야 했던 여성들이 갈수록 자신의 목소리를 더 크게 내고 있다는 것이다. 서아프리카 각국 정부도 국제사회의 각종 협약에 가입하면서 가정폭력과 여성차별 등을 금지하는 법안들을 시행하고, 여성 전담부서가 설치되는 등 변화 조짐을 보이고 있다.

종교단체들의 의식 변화도 눈에 띈다. 과거 가정의 소중함을 강조하며 이를 파괴하는 것을 금기시했던 현지 기독교단체는 폭력, 간음으로 얼룩진 가정생활을 유지하는 것보다 이로부터 피해자들을 벗어나게 하는 것이 더 나은 선택이라고 방침을 바꾸고 있다.

니제르의 노변 법정에서 판사가 소송 당사자들의 의견을 들어가며 중재하고 있다. 뉴욕타임스 캡처
니제르의 노변 법정에서 판사가 소송 당사자들의 의견을 들어가며 중재하고 있다. 뉴욕타임스 캡처

각종 미디어에 대한 접근성이 높아진 것도 이혼 증가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 나이지리아에서는 여성들이 연대해 나쁜 남편과 아버지들에게 대항한다는 내용의 영화 ‘파업 중인 아내들’이 빅히트를 치면서 속편 제작 및 드라마화까지 이뤄졌다. 니제르 등지에서도 대중가요 가사나 토크쇼 등에 여성과 아내의 권리에 대한 내용이 대거 담겼다. 정부 후원을 받는 라디오 프로그램은 여성의 이혼이 죄가 되지 않는다는 이슬람 종교지도자들의 설법을 방영하고 있고, 불행한 결혼생활을 상담하는 코너에 신청자가 쇄도하고 있다. 올라주무케 야콥-할리소 나이지리아 밥콕대 석좌교수는 “여성들은 이제 결혼생활이 끝난다고 인생이 끝나는 게 아니라는 점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여성들의 의식이 깨어나는 반면 남성들의 권위는 점점 추락하고 있다. 현재 나이지리아 등에서는 오랜 내전으로 남성들이 과거처럼 활발한 경제활동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서아프리카는 전통적으로 일부다처제에 따라 많은 아내를 거느리고 높은 출산율로 많은 자녀를 갖지만, 전과 달리 가장이 가족을 건사할 만큼 수입을 올리지 못하게 됐다. 이 때문에 생계 전선에 뛰어드는 여성들이 늘고 일자리를 찾아 집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가 있는 남편들이 증가했다. 실제 서아프리카 지역에서 가장 자주 제기되는 이혼 사유 중 하나가 경제적 부양능력의 부재이고, 이혼 시 가장 많은 다툼이 벌어지는 지점 또한 재산 분배과정이라고 현지 법원 관계자는 설명했다.

그러나 서아프리카 지역 여성들의 권익 보호는 이혼 증가만으로는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지적이다. 유엔에 따르면 여전히 니제르의 아동 결혼율과 10대 출산율은 세계 최고 수준이고 교육 수준은 바닥을 헤매는 실정이다. 빈곤 가정에서는 지참금 획득의 수단으로 어린 딸들을 거래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이 때문에 아프리카 지역 구호단체들은 여자아이들의 강제 결혼을 막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박준우 기자 jwrepublic@munhwa.com
박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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