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학생들 아이디어로 디자인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이 설치
비밀의 방·트램펄린 등 갖춰
道교육청 올해 10개교로 확대
‘노는 아이들’ 프로그램
작년 한들초교 등 4차례 열려
재활용건축·전통놀이 주제로
아이들 스스로 놀이규칙 정해
꿈과 끼 마음껏 펼치고 즐겨
2015년 대한민국 아동권리헌장은 ‘아동은 휴식과 여가를 누리며 다양한 놀이와 오락, 문화예술 활동에 자유롭고 즐겁게 참여할 권리가 있다’고 밝혔다. 1959년 나온 유엔 아동권리선언은 ‘사회와 공공기관은 아동들이 놀 권리를 누릴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천명했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치열한 학업 경쟁과 사교육, 이에 따른 스트레스 등으로 국내 아동(유엔아동권리협약상 만 18세 미만)의 행복지수는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쉴 권리, 놀 권리를 보장받지 못한 탓이다. 유엔 아동권리위원회는 그동안 3차례에 걸쳐 한국 교육의 극심한 경쟁을 우려하고 아동의 놀 권리 침해문제 해결을 권고했다. 아동 주거 빈곤의 문제도 심각하다. 문화일보는 초록우산어린이재단(회장 이제훈)과 함께 아동의 놀 권리와 주거 빈곤의 실태를 개선, 회복하기 위한 현장과 노력을 조명해 사회 구성원 모두가 이 문제의 중요성을 함께 인식하는 기회를 마련하고자 한다.
지난해 12월 7일 경남 거창군 거창읍 거함대로 창남초등학교. 이색적인 놀이 공간 하나가 들어섰다.
66㎡ 규모의 실내놀이 공간인 ‘꿈다(多)락(樂)’. 개원식엔 학교, 교육청 관계자들부터 주인공인 어린이들까지 한자리에 모여 축하 인사를 나눴다. 창남초등학교가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경남아동옹호센터로부터 ‘어디든 놀이터’ 사업의 지원을 받은 결과물이다. ‘함께 뛰어놀며 꿈을 키우세요’ ‘즐거움 속에 꿈들이 무럭무럭 자라기 바랍니다’ ‘잘 노는 일은 여러분들의 의무이고 권리입니다’란 격려 메시지도 어우러졌다.
꿈다락은 학기 중은 물론, 방학 중에도 이용할 수 있는 놀이터다.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아기자기한 색감을 썼다. 편안한 마음으로 마음껏 놀이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꾸몄다. 암벽등반, 트램펄린, 비밀의 방, 구름다리, 볼 풀장, 미끄럼틀 등 시중의 키즈카페와 견줘도 손색없는 시설을 갖췄다. 꿈다락을 이용한 창남초 6학년 노영진 군은 “실내공간인 만큼 변덕스러운 기상이나 미세먼지도 걱정이 없다”고 말했다. 뛰어내리고 타고 오르며, 미끄러지고 숨는 놀이의 성격과 어린이들의 심리를 살펴 안전쿠션과 2중 그물망도 설치했다. 학생들이 색다른 공간에 환호한 것은 물론이다. “곧 졸업할 6학년 학생들은 자신들의 아이디어로 만들어졌는데 놀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참 아쉽겠다”는 반응도 나왔다.
이 공간이 돋보이는 이유는 설치 과정에서 창남초 학생들의 의견과 아이디어를 십분 반영했기 때문이다. 신동성 창남초 교사는 “설치 9개월 동안 308명의 전교생과 교사, 학부모가 디자인, 설계 의견을 나누고 디자인 최종 선정투표를 했다”며 “어린이 사업설명회, 공사 및 검수, 놀이 공간 이름 짓기까지 한마음으로 참여했다”고 말했다. 앞서 2017년 3월부터 초록우산어린이재단 경남아동옹호센터는 ‘아이들이 말하는 학교환경 만들기’ 사업의 일환으로 초등학교가 안고 있는 물리적 환경이 초등학생들에게 어떤 의미인지, 어린이의 권리 관점에서는 어떤 변화가 필요한지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 경남지역 21개 초등학교, 6646명의 학생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하고 6개교의 교사, 학생과 간담회를 여는 한편, 학교 현장조사를 했다.
이 결과, 학교환경 개선요구 중에서 가장 절실히 원하는 게 교실 이외의 실내놀이 공간으로 파악됐다. 설문을 통해 아이들은 “뛰어도 혼나지 않는 장소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숟가락이 너무 커서 입에 안 들어가요.” “엉덩이가 변기에 빠져요” 등 다양한 의견을 제시했다. 아이들의 놀이문화와 사고에 무심하고 어른 눈높이에 고정된 시설이 얼마나 아이들을 힘들게 하는지 반추하게 하는 대목이다. 정소영 경남아동옹호센터 대리는 “이에 맞춰 어디든 놀이터 시범사업을 기획했고 4개교를 현장 답사해 창남초를 선정했다”고 말했다. 놀이터 설치에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은 4000만 원을 지원했다.
오랜 공을 들인 때문인지 곧 좋은 결실로 이어졌다. 경남교육청에서 학생들의 의견을 올해 사업계획에 반영해 1개교당 5000만 원씩 모두 10개교에 예산을 투입, 교내놀이공간 조성을 확대하기로 한 것. 정 대리는 “교육청에서 창남초교의 사례를 본 후 아이들이 원하는 내용이 무엇인지 알게 됐다며 검토한 끝에 다른 학교에도 전파하기로 확정됐다”며 “올해는 아동 요구를 살린 토크 콘서트와 놀이 공간 모서리 보호대 설치, 네트워크 구성 등에도 나서겠다”고 말했다.
‘어디든 놀이터’와 함께 또 하나 눈에 띄는 신규 놀이지원 사업이 경남 창원 지역을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는 ‘노는 아이들’이다. ‘모든 어린이는 충분히 쉬고 놀 권리가 있다’는 유엔 아동권리협약 제31조에 근거해 마을이 나서 아이들이 충분히 쉬고 놀 수 있는 공간과 놀거리 마련을 목적으로 한 ‘마을 기반 여가 놀이지원사업’이자 팝업 놀이터다. 이에 맞춰 지난해 창원시 의창구 봉림동 마을학교인 ‘한들산들’과 한들초등학교는 4월, 6월, 9월, 11월 4차례에 걸쳐 각각 스포츠, 물, 전통놀이, 재활용건축을 놀이 주제로 추진했다.
이 역시 기획 단계부터 회당 20명 안팎의 아동이 참여해 아이디어회의를 거쳤다. 청소년봉사단, 마을학교 주민들도 기획회의에 나서 공동체 의식을 더 높였다. 엄마가 정성껏 준비한 떡볶이, 핫바 등 간식을 먹으며 자유롭게 부스별로 자유놀이, 팀 놀이, 단체전을 펼쳤다. 참여 인원도 1회에는 200여 명, 2, 3회에는 300여 명 안팎, 실내에서 진행한 4회에는 70명가량이 참여하는 등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이순자 한들산들 대표는 “서울, 수도권이나 지방 모두 자녀교육에 대한 부모의 불안 심리는 비슷하고 아이들의 놀 권리는 침해받고 있는 상황에서 의미 있는 놀이기획이 됐다”고 말했다. 노는 아이들 프로그램은 올해는 3회를 추진하되 아동들이 스스로 놀 권리를 선택하는데 중점을 두기로 했다. 제한된 시간과 공간 속에서 노는 것에서 벗어나 어린이 스스로 놀이의 규칙을 정하고 놀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 ‘놀이의 본질’을 지키고 자율성을 보장하는데 방점을 둘 계획이다. 이 대표는 “어린이놀이기획단이 준비부터 실행까지 모두 추진할 수 있게 아동참여 비율을 높이겠다”고 말했다.
초록우산어린이재단 관계자는 “어린이는 꿈과 끼를 마음껏 펼치며 놀아야 건강해 지고 창의적 생각과 집중력을 높일 수 있지만 어른들은 시간 낭비라고 생각하거나 공부만을 원한다”며 “학교 및 지역사회에 어린이가 원하는 놀이 공간이 마련되고 유지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이민종 기자 horizon@munhwa.com
‘아동권리옹호 Child First’는 문화일보와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이 공동기획으로 진행하는 연중캠페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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