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자 룩셈부르크, 그녀는 1919년 1월 15일 살해됐다. 독일 연방헌법보호청의 건물을 막 나선 순간 둔기로 머리를 강타당했다. 시신은 찬바람 파고드는 베를린의 란트베어 운하 물속에 버려졌고 4개월 뒤 하류 수문에서 떠올랐다. 제1차 세계대전 패전과 독일 제정 몰락 속에서 집권한 사회민주당 내부의 우파 세력은 한때 동지였기는 해도 스파르타쿠스단(독일 공산당의 전신)을 결성한 로자를 그대로 놓아둘 수 없었다.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외치는 급진적 사상가 로자에 대한 ‘비겁한 살인’이었다. 정치적 암살이라는 문구가 부끄러울 정도다.
일간지 베를린 자이퉁은 지난 7일 ‘로자 룩셈부르크 피살 100년의 발자취’를 제목으로 특집기사를 실었다. 독일 곳곳에서는 10일부터 15일까지 로자의 삶과 생애, 사상을 돌아보는 출판과 토론, 강연회 행사가 열린다. 베를린 시 템펠호프-쇠네베르크 구의 빌란트스트라세 23, 로자가 한때 살았던 집 명판에는 빨간 카네이션이 꽂혀 있다. 명판에는 “그녀는 평화와 사회적 정의 그리고 노동자 계급의 국제적 연대를 위해 투쟁했다”고 적혀 있다. 앙겔리카 쇼틀러 구청장은 “우리는 위대한 사회주의자, 로자 룩셈부르크를 기억해야 한다”고 말했다.
독일 사회는 도대체 왜, 이 실패한 혁명가를 조명하고 있는 것일까. 그녀에게 자본주의는 모순과 위기로 가득 찬 세계였다. 인류의 유일한 희망은 정치권력을 장악해 사회주의를 여는, 새 사회를 향한 혁명의 망치질에 있었다. 당시 저명한 사회민주주의 이론가였던 에두아르두 베른슈타인이 주창했던 수정주의 정치개혁 노선은 사기꾼이 외치는 속류 경제학에 불과했다. 하지만 역사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독일에서는 나치즘이 득세했고 사회민주주의가 뿌리를 내렸다. 공산주의와 사회주의는 도태와 거세의 길을 걸었다. 현재 독일의 연방의회인 분데스타크의 1, 2당은 우파와 좌파가 기반인 기독민주당과 사회민주당이다. 두 정당은 전체 709석 중 각각 200석과 152석을 차지하고 있다. 사민당의 좌파 색채는 옅어지고 있다는 평가다. 로자가 필연적 붕괴를 예언했던 자본주의는 모순을 스스로 치유하는 해독제를 갖고 있었다. 로자의 발자취에 대한 추적은 미래의 길을 찾기 위한 목적은 아니다. 이념의 시대 어느 사회주의자의 열정을 찬미하면서도 이상주의자의 불운한 과거를 반복하지 않으려는 의도를 갖고 있다.
지구 다른 편, 2019년 한국 서울에서는 반대의 일이 벌어지고 있다. 마르크스-레닌주의에서 김일성·김정일주의로 변질된 ‘우리식 사회주의’, 망해가는 북한을 살리려고 애쓰고 있다. 공단을 재개하고 철도를 연결하면 밝은 미래가 열릴 것 같은 환상이 가득하다. 하지만 운동권 출신 정치인들의 친북 좌파 민족주의, 이념의 지정학적 위치에 놓인 갈라파고스 사회주의 화석국가 북한을 위한 헛된 노력일 뿐이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로 엇갈린 두 체제가 함께 번영할 수 있다는 민족경제 공동발전론은 허상이다. 수령을 정점으로 하는 북한 권력 체제와 사회 구조의 변화 없이 한반도의 봄은 오지 않는다. 로자는 인류를 낙원으로 이끌 뿔이 달린 하얀 말, 유니콘의 고삐를 잡으려고 했다. 결과는 실패였다. 로자의 삶과 사상에서 우리가 떠올려야 하는 교훈이다.
jk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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