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장벽 전쟁
‘불법 이민자 차단’ 이유 들며
美-멕시코 국경에 장벽 추진
반대파 의식 1162㎞로 축소
10년간 180억달러 배정 요구
민주당은 670억달러 소요추산
건축소재 따라 비용 더 들수도
트럼프 “비상사태 선포” 엄포
예산 전용 등 超헌법적인 권한
“선포땐 엄청난 권력남용” 비판
◇연방정부 문 닫게 한 트럼프 장벽 = 11일 워싱턴포스트(WP) 등 외신에 따르면 장벽건설 예산을 둘러싼 갈등으로 지난해 12월부터 미 연방정부 셧다운(일시적 업무정지) 사태를 부른 트럼프 대통령의 미·멕시코 국경장벽 건설 계획의 시작은 그의 대선 후보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멕시코를 통해 미국으로 넘어오는 불법 이민자들을 원천 차단하기 위해 2000마일(약 3218㎞)에 달하는 미·멕시코 국경에 장벽을 쌓는다는 공약이 제기된 것이다. 이전 행정부에서 이미 철조망이나 울타리가 설치된 기존 705마일(약 1134㎞)을 제외해도 상상하기 힘든 길이의 장벽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초창기 폭 3m, 높이 10~12m짜리 콘크리트 장벽이 2000마일에 걸쳐 늘어서 있는 장면을 구상했다. 하지만 야당인 민주당의 반발이 거셀 것으로 보이자 722마일(약 1162㎞) 정도만 장벽을 신축하거나 개·보수하겠다고 입장을 바꿨다. 민주당 측 요구라고 주장하며 지난 6일에는 소재도 콘크리트에서 강철로 바꾸고 ‘장벽’보다 ‘장애물’을 설치하겠다고 강조했다. 이미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 인근 사막에서는 8종의 장벽 견본이 세워져 테스트 중이다. 이 중 4가지는 콘크리트로 만들어졌고 다른 2가지는 금속, 나머지 2가지는 콘크리트와 금속 기둥, 강철판 등을 조합한 복합형이 제시됐다. 불법 이민자들이 얼마나 손쉽게 장벽을 기어오를 수 있는지, 쉽게 무너지지 않는지, 혹 장벽 아래로 구멍을 파 넘어올 수 있는지 등에 대한 정밀테스트가 진행되고 있다.
◇민주당 “국경장벽 670억 달러 들어”=트럼프판 만리장성에는 천문학적 예산도 소요될 전망이다. 대선 경선 당시 장벽 건설예산이 최대 100억 달러(약 11조1740억 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던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해 1월 의회에 10년간 180억 달러(20조1132억 원)의 예산 배정을 요구하고 나섰다. 클레어 매캐스킬(민주·미주리) 전 상원의원은 장벽 건설에 마일당 평균 3700만 달러(약 413억8800만 원)가 들 것으로 계산해 전체 국경에 장벽을 세울 경우 무려 670억 달러(약 74조9462억 원)가 필요하다고 추산하기도 했다. 콘크리트, 강철 등 어떤 건축 소재가 선택되느냐에 따라서도 가격은 천차만별로 달라질 수 있다. 여기에 장벽건설 계획을 관할하는 미 국토안보부는 건설비용 외에 인력 증원, 인근 도로 건설 등에 추가로 150억 달러(16조7610억 원)가 소요될 것으로 전망했다.
장벽 건설을 강행하려는 트럼프 행정부와 예산을 한 푼도 배정할 수 없다는 민주당 간 대치로 연방정부 셧다운 사태가 계속되고 있지만 국토안보부는 지난해 12월 12일 2017년 회계연도에 의회로부터 텍사스주 엘파소 지역(20마일)을 비롯해 캘리포니아주 엘센트로(2.25마일), 샌디에이고(14마일) 등의 지역에 모두 40마일(약 64㎞) 길이로 건설하는 장벽 예산 2억9200만 달러를 지원받아 공사가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기존 비효율적이고 노후한 국경 장애물을 강철기둥 장벽으로 대체하는 공사다. 엘파소와 엘센트로 지역은 이미 장벽이 완공됐고 샌디에이고 지역은 오는 5월 공사가 마무리될 전망이다.
◇트럼프, 장벽 건설 위해 국가비상사태 선포하나 = 트럼프 대통령은 9일 장벽건설 예산을 둘러싼 셧다운 갈등과 관련해 “나는 이번 싸움을 원하지 않았다”면서도 “합의가 안 되면 국가비상사태 선언으로 갈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세라 허커비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도 이날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미·멕시코 국경장벽을 건설하기 위한 국가비상사태 선포(계획)는 아직 분명히 테이블 위에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앞서 지난 4일에도 “전적으로 국가보안을 위해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할 수 있다”며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면 그것(장벽)을 매우 빨리 세울 수 있다. 이는 장벽 건설을 위한 또 하나의 방법”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장벽 건설을 위한 국가비상사태 선포 발언에 엘리자베스 고이테인 뉴욕대 브레넌사법센터 자유·국가안보프로그램 공동책임자는 “미국 대통령은 1976년 제정된 ‘국가비상사태법’에 따라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는 대통령이 의회가 신속하게 처리할 수 없는 긴급한 재앙 상황을 ‘비상사태’라고 간주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그는 “우리가 처해있는 현 상황은 (비상사태가) 아니다”며 지금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한다면 “엄청난 권력 남용”이라고 꼬집었다.
미국 대통령이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할 경우 초헌법적 행정 권한이 주어져 체포·구금권, 주방위군 발동권 등을 제외하면 의회에 일방 통보만 한 뒤 거의 모든 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 특히 의회가 이미 승인한 예산 가운데 필요한 부분을 전용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지기 때문에 국방부 예산 중 마약수송을 저지하기 위해 편성돼 있는 10억 달러 수준의 예산과 국방 관련 건설 프로젝트를 위해 배정된 220억 달러의 예산을 전용할 수 있다. 그러나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할 경우 불법 이민자 및 마약, 인신매매를 막아야 한다는 트럼프 대통령 주장이 전쟁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인지에 대한 큰 논란이 뒤따를 전망이다.
김현아 기자 kimhaha@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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