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선호 국토교통부 제1차관

수원 시내 한복판에 자리 잡은 화성은 동양 성곽 건축의 백미로 손꼽히는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이다. 유려한 외관, 뛰어난 기능과 함께 화성이 주목받는 또 하나의 이유는, 축조 과정을 글과 그림으로 상세하게 기록한 ‘화성성역의궤’에 있다.

일반적으로 경이로운 전근대의 건축물을 보면, 강제노역에 동원돼 고통받았을 백성들의 모습을 떠올리게 된다. 그러나 ‘화성성역의궤’를 보면 이러한 생각은 이만저만한 오해가 아닐 수 없다. 이 의궤에는 화성을 건축하는 데 쓰인 자재와 공법, 설계도는 물론 공사에 참여한 백성들의 이름과 직무, 근무 일수, 급료까지 빠짐없이 기록돼 있다. 공사를 하다가 다치면 임금의 절반을 지급했고, 현장에는 진료소를 두었다고 하니 오늘날에 비춰봐도 손색없는 복리후생이다.

그동안 우리 건설산업은 대한민국 발전의 역사를 만들어 왔다. 건설인들이 사막과 전장을 누비며 청춘과 맞바꾼 오일달러는 한강의 기적을 이룬 밀알이었다. 지난해 기준으로 건설투자는 국내총생산(GDP)의 16.6%에 이르고, 건설업 종사자는 200만 명을 넘어섰다. 건설산업은 그야말로 명실상부한 국가 기간산업이다. 그러나 성과와 규모에 비해 일자리의 질을 들여다보면 아직도 많은 아쉬움이 있다. 반복되는 임금 체불과 장시간의 고강도 노동, 불투명한 직업 전망으로 건설산업은 청년층이 기피하는 일자리가 됐다. 이는 건설 현장의 고령화와 숙련된 인력의 대가 끊기는 문제로 이어졌고, 부족한 일손은 외국 인력이 메우고 있다. 건설산업의 기반이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건설산업의 경쟁력을 높여 글로벌 건설 강국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기술에 대한 투자도 해야 하고 낡은 제도도 개선해야 한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산업으로 근본적인 체질을 개선하는 것이다. 사람을 아끼고, 열심히 일한 만큼 대우받으며 전문 인력으로 성장할 수 있는 건설산업 풍토를 조성해야 한다.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제때에 받지 못하는 산업에 미래가 있을 리 없다.

정부는 건설산업의 열악한 근로 여건을 그대로 방치하면 생산 기반이 붕괴될 수 있다는 위기의식 속에 ‘건설산업 일자리 개선대책’을 마련했다. 건설 근로자의 임금 보장 강화와 근로 환경 개선, 숙련 인력 양성 등을 위한 많은 과제를 담았다. 그중에서도 가장 핵심은, 공공공사 발주자 임금직불 제도다. 혈세로 공사대금을 지급하는 공공공사에서만이라도 체불이 없어야 한다는 현장의 목소리가 그만큼 컸기 때문이다.

지난해 1월부터 국토교통부와 산하기관에서 발주한 공사 현장에 임금직불제를 우선적으로 적용한 결과, 매년 100억 원 안팎이던 체불이 단 한 건도 발생하지 않았다. 지난달 18일에는 직불제를 모든 공공공사에 의무화하는 건설산업기본법 개정안이 공포됐다. 올 하반기부터는 그동안 건설산업의 고질적 병폐로 지적받아온 대금 체불 문제가 획기적으로 줄어들 것으로 기대된다. 아울러, 발주자가 책정한 임금이 현장의 건설 근로자에게 그대로 지급되는 적정임금제와 건설기능인 등급제를 도입해 경험이 풍부하고 기술이 좋은 기능인에게 그에 합당한 보상이 주어지도록 할 계획이다.

말 한마디가 곧 법인 전제군주가 꼬박꼬박 임금을 주고 인부들의 복지까지 세심하게 헤아린 이유도 어찌 보면 간단하다. 정조대왕의 애민정신을 빼놓을 수 없겠지만, 생산성을 높이고 시공 품질을 확보하는 데 ‘사람에 대한 배려’보다 효과적인 수단이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기본에 충실한 건설산업이라면 그 어떤 위기도 어렵지 않게 극복하리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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