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 농단 의혹 겨냥한 적폐청산
사법부독립·3권분립 훼손하고
이념편향 우려까지 불러일으켜
공정재판 받을 권리 외면한 채
김명수체제 권력투쟁 빠지면
新적폐 책임자로 부메랑 자초
지난 주말 사법 71년사에 처음으로 전직 대법원장이 검찰 소환 조사를 받았다. 이번 주말 영장 청구 가능성까지 거론된다. 전직 대통령 2명이 수감 중인데 전직 대법원장이라고 예외가 될 수 없다는 지적도 있다. 그러나 사법부가 민주주의의 최후 보루라는 점에서 우려를 금할 수 없다.
사법부는 ‘선출되지 않는 권력’이다. 3권분립의 두 축인 대통령이나 국회의원들과 달리 선거를 통해 국민의 심판과 선택을 받지 않는다. 대법원장과 대법관에 대한 국회 임명동의가 유일한 견제장치다. 더구나 대법원장은 대법관 제청권, 법관 인사권, 헌법재판관 3명 추천권 등 막강한 권한을 갖고 있다. 이런 시스템이 구축되고 유지된 것은 정치권력으로부터 사법부의 독립을 보호해야 한다는 사회적 요구가 반영됐기 때문이다. 따라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정치권력의 자의적 개입이 아니라 ‘상고법원 설립’이라는 개인의 소신에 따라 정치권력과 모종의 거래를 시도했다면 상응하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 그러나 양 전 대법원장이 감당해야 할 역사적 책임은 법적 처벌의 무게를 넘어선다. 그가 원인을 제공한 ‘사법 적폐청산’이 사법부가 지켜야 할 원칙, 권력으로부터의 독립, 이를 근간으로 하는 3권분립을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기 때문이다.
당장 적폐청산이 ‘전국법관대표회의(법관회의)’의 주도로 진행되면서 사법부가 ‘실체적 진실 규명’보다 우선시해야 할 ‘법과 절차 준수’가 무시되고 있다. 법관회의는 대법원장 자문기구로 출발했지만, 자문기구 이상의 영향력을 과시했다. 블랙리스트에 대한 사법부의 3차례 자체 조사에도 불구하고 검찰 수사 촉구안을 결의했고 김명수 대법원장은 수용했다. 이어 사법 농단 의혹 연루 법관에 대한 탄핵 검토까지 결의하다 결국 ‘법관회의를 탄핵해야 한다’ ‘법관회의가 권력기구화됐다’는 내부 비판을 자초했다. 법관회의가 의견 수렴 과정에서 이견을 무시했고 탄핵 등의 결의를 할 근거가 없다는 주장이 제기된 것이다. 각자 헌법기관으로 법률과 양심에 따라 판단해야 할 법관들이 탄핵과 같은 안건을 다수결로 의결하는 것은 스스로 존립 근거를 부정하는 것이란 지적도 나오고 있다.
적폐청산이 검찰과 정치권 등 외부세력을 끌어들여 사법독립을 훼손하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는 점도 간과할 수 없는 대목이다. 김 대법원장이 검찰 수사를 수용하자 주춤거리던 검찰은 매머드 수사팀을 동원해 80여 명의 전·현직 법관을 소환 조사하는 등 사법부를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정치권도 가세했다. 대법원이 사법 농단 의혹 재판과 관련해 “특별재판부는 헌법상 근거가 없고, ‘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한 재판받을 권리를 침해할 소지가 있다”는 의견서를 국회에 보냈지만, 더불어민주당은 양 전 대법원장 기소를 계기로 특별재판부 구성을 추진할 방침이다. 대법원이 사법 농단 연루 의혹 현직 판사들에 대한 징계를 마무리했지만, 민주당과 정의당은 관련 판사 탄핵을 추진 중이다.
더구나 적폐청산의 명분 아래 진행되고 있는 사법부 주류세력의 교체는 이념 편향 우려를 낳고 있다. 김 대법원장이 사법행정 민주화 차원에서 시범 실시 중인 ‘법원장 후보 추천제’에 따라 의정부지법이 추천한 신진화 부장판사는 진보성향 법관 모임인 국제인권법연구회 회원이다. 대구지법 역시 3명을 추천했는데, 그중 1명이 김 대법원장(1, 2대 회장)에 이어 국제인권법연구회 3대 회장을 지낸 김태천 제주지법 부장판사다. 대법원도 ‘코드 색채’가 뚜렷해졌다. 지난해 12월 28일 김상환 대법관 임명으로 14명의 대법관 중 문재인 대통령이 임명한 인사가 9명에 달한다. 헌법재판소도 오는 4월 18일 퇴임하는 서기석, 조용호 재판관의 후임도 문 대통령 몫이어서 9명의 재판관 중 6명이 특정 성향으로 채워진다.
사법부 개혁의 목적은 국민이 공정하고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다. 사법부 내부 민주화는 필요조건일 뿐 그 자체가 목적이 될 수 없다. 특히 사법부 민주화가 내부 주도권을 둘러싼 정치적·이념적 권력투쟁으로 흐르면 사법부는 ‘정의의 수호자’로서 존립 근거를 잃게 된다. 지금은 양 전 대법원장이 사법 적폐의 원인 제공자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지만, 이런 식의 청산이 계속되면 김 대법원장과 법관회의가 새로운 적폐의 책임자로 역사에 기록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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