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센터서 도우미 근무하다
공직업무 흐름알며 관심커져
작년 公試합격뒤 통계청 발령
사회조사분석·컴퓨터활용 등
틈틈이 취득한 자격증만 4개
“포털에 써왔던 통계상식 답변
분량 많아져 책으로 내고싶어”
우리 사회 구성원은 모두 각기 다른 신체 조건과 성격을 가지고 있다. 관심 분야 역시 차이가 난다. 자신의 적성에 맞는 일을 찾는 게 일자리 영역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배경이다. 자신이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일자리를 얻어야 업무 자체가 즐겁고 능률도 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고려하면 비장애인보다 일자리 찾기가 더 어려운 장애인들이 적성에 맞는 직업을 선택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장애인복지법 제21조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장애인이 적성과 능력에 맞는 직업에 종사할 수 있도록 필요한 정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보건복지부와 한국장애인개발원은 이에 맞춰 장애인일자리사업을 통해 장애유형별 맞춤형 신규 일자리를 찾고 적합한 일자리를 장애인에게 제공하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이는 장애인이 민간 시장으로 진출하는 성과로도 연결되고 있다.
“공무원이 되고 나니 책임감이 더 많이 생겼습니다. 예전에는 주변에서 많이 도와줬는데, 지금은 제가 책임지고 일을 해야 한다고 각오를 다졌고 더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지난 9일 경기 수원시 경인지방통계청 수원사무소 농어업동향팀에서 만난 허경웅(31) 통계주무관은 새내기 공무원이다. 언어장애가 있어 말은 다소 느릿했다. 그러나 얼굴엔 미소가 끊이지 않았다. 가족과 주변에선 공무원이 된 허 씨가 대견스럽다고 했다. 몇 개월 전까지만 해도 지역 주민센터 행정도우미로 근무했던 허 주무관은 이제 어엿한 국가공무원 신분이다. 지난해 실시된 9급 공무원 장애인 공채 시험에 당당히 합격, 같은 해 10월부터 통계청 수원사무소에 배치돼 업무를 배우고 있다. 대학에서 통계학을 전공한 게 통계직종 지원의 ‘기준’이 됐다. 새내기 공무원이라 아직은 업무처리에 서투른 점이 적지 않지만 하나하나 배워가며 일하는 게 즐겁고 큰 기쁨을 준다고 했다.
허 주무관은 앞서 장애인일자리사업을 통해 주민센터에서 행정도우미로 근무하면서 공직 사회의 업무 흐름을 배운 게 적성을 찾는 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통계청에 근무하게 된 것도 당시 주민센터에서 함께 일했던 공무원이 공무원 시험을 보라고 권유한 게 계기가 됐다. 행정도우미 업무가 기간제 근무였던 만큼 정규 일자리에 대한 동기부여도 됐다.
허 주무관은 “공무원 시험 준비는 틈나는 대로 했는데 평소 책 읽기를 좋아했던 점도 든든한 밑거름이 됐다”고 했다. 말이 서투르다 보니 책을 보고 글을 쓰는 등 정적인 분야에 관심이 많았던 게 오히려 장점이 됐다. 바둑과 음악 감상도 좋아하는 분야다. 주민센터 행정도우미를 하기 전엔 도서관 사서보조 업무도 배웠다. 허 주무관이 보유한 공인 자격증도 사회조사분석사 2급. 컴퓨터활용능력 2급, 사무자동화산업기사, 2급 사서자격증 등 4개나 된다.
그는 공직에 진출하면서 큰 포부와 계획도 생겼다.
“어릴 때부터 포털사이트에 올라온 통계 상식 질문에 답변을 자주 달았는데, 그 분량이 꽤 됩니다. 그 내용을 모아서 앞으로 책을 내고 싶습니다. ”
꼼꼼한 성격을 반영하듯 허 주무관은 월급도 거의 사용하지 않고 알뜰하게 모으고 있다. 허 주무관은 “아직 여자친구는 없는데, 나중에 결혼하면 많은 돈이 필요할 것 같아 저축하고 있다”고 말했다. 적성에 맞는 일자리를 찾는 장애인들에게의 조언도 잊지 않았다. 허 주무관은 “장애인은 비장애인에 비해 신체적 단점이 많지만, 단점과 반대되는 장점을 빨리 찾길 바란다”고 조언했다.
허 주무관이 이처럼 자리를 잡게 된 데는 공공 영역의 역할을 빼놓을 수 없다. 허 주무관도 “평소 직장 선배와 팀장이 업무적으로도 많이 도와줬는데 스스로 ‘인복(人福)’이 많다고 생각한다”고 감사해 했다. 그가 속한 지방통계청의 주된 업무 중 하나가 현장 조사인 데다, 수원사무소의 특성상 경기 화성, 평택, 오산 등 담당 지역이 넓어 운전이 필수다. 농어업동향팀에서 이에 필요한 많은 부분을 배려하고 지원하고 있다.
유환일 수원사무소 농어업동향팀장은 “처음에는 걱정도 됐는데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좋아진 덕분에 현장에서 ‘직업에 귀천이 어디 있느냐’ ‘내가 잘 알아서 듣겠다’고 할 정도로 많은 이가 허 주무관을 배려해 놀랐다”며 “기관 입장에서도 허 주무관의 업무가 빠르지는 않지만 생각보다 잘하고 있다”고 말했다.
경인지방통계청은 허 주무관이 현장 업무보다 더 적합한 직무에 배치할 수 있도록 업무 조정도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유 팀장은 “좋은 일자리도 좋지만, 정부에서 적성에 맞는 업무를 찾을 수 있도록 직무개발도 더 활발해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국장애인개발원 관계자는 “장애인들이 더 잘하고 적성에 맞는 직무를 개발하고 배치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수원=이용권 기자 freeuse@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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