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00원 들고 무작정 상경 소년
온갖 역경 딛고 ‘업계 대부’로
식품 개발로 어려운 농촌 돕고
애국도 한다는 생각에 달려와
“이렇게 산 사람도 있구나 하며
작은 보탬 되길 바라며 책펴내”
“제가 쉬운 길을 택한다는 건 제 자신과 약속을 깨는 것이고, 그것은 곧 소비자에게 죄를 짓는 것입니다.” 최근 ‘나는 쉬운 길을 선택한 적이 없다’를 출간한 이능구 칠갑농산 회장은 15일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제 자신과 약속을 지키며 쌀 가공 50여 년 한길을 걸어왔다”면서 “그 약속이 오늘날 소비자와 칠갑농산 간 신뢰의 밑바탕이 됐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흰 쌀밥 한 번 실컷 먹어보는 게 평생소원’이던 일제강점기에 충남 청양군 칠갑산 자락에서 태어나 유소년기를 그야말로 속이 텅 비어 꼬르륵 소리가 절로 나는 배고픈 나날을 보냈다. 쌀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늘 부족했다. 첫째로는 일제의 수탈에 농촌이 피폐해졌으며, 그나마 일용할 양식이었던 쌀은 빚을 갚거나 농사지을 땅을 마련하기 위한 최후의 보루였지, 함부로 먹는 ‘식량’이 아니었던 것이다.
칠갑농산의 상호는 한때 ‘애국식품’이었다고 한다. “농촌을 잘 살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우리나라 식량 자급도는 현재 26%쯤으로 알고 있는데 이 중 24%를 쌀 자급률이 차지합니다. 이제 쌀은 남아돌게 됐지만, 농촌에서는 아직도 쌀농사가 많고, 소비가 잘 안 돼요. 그래서 저는 쌀가공식품을 개발·생산해 농촌도 돕고 나라에도 애국한다는 생각으로 이 사업에 평생을 걸어왔습니다.”
배가 고파 견딜 수 없었던 소년 이능구는 단돈 8000원을 들고 무작정 상경했다. 그는 서울에 올라와서 아이스크림을 팔고, 떡을 받아 팔았다. 얼어붙은 언덕길에 떡을 잔뜩 실은 자전거를 끌고 가는 그의 손엔 장갑조차 없어서 갈라진 살 틈새로 금방이라도 피가 터져 나올 것 같았다. 분명 그것들은 역경이었지만 그는 이후 더한 역경도 헤쳐나갔다. 동업자의 배신과 무지에서 비롯된 법과 규정과 절차의 걸림돌, 무엇보다도 쉽게 갈 수 있는 길이 보일 때가 가장 괴로웠다.
“모든 것은 정면돌파가 답이었습니다. 뇌경색으로 쓰러졌을 때도 저를 다시 일으켜 세운 건 ‘힘든 길을 피하지 말자’는 제 신념이었습니다. 고난을 돌파하지 않고 피하면 오히려 더 큰 난관이 닥쳐오게 마련입니다. 그렇기에 이겨내야 했습니다.”
이제 그는 국내 쌀 가공 식품업계의 ‘대명사’이자 ‘1인자’가 됐다. 450여 직원이 450여 가지의 품목을 생산해내고 있으며, 그가 시행착오를 거듭해 개발한 가공 관련 기계들은 업계의 기초로 지금도 여러 방면으로 활용되고 있다.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다”는 그는 “우리 것을 믿고 찾아주시는 소비자와의 무언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늘 제 자신을 돌아본다”고 말했다.
냉면육수를 비롯한 소스개발·생산에도 박차를 가해온 그는 고향 청양에 소스전문 공장을 세우고 있으며, 반찬류까지 영역을 확대해나갈 계획이다. 이 회장이 낸 책에는 고난을 이긴 인생 역정과 레시피도 들어 있다.
“보잘것없을 수도 있으나 ‘이렇게 살아온 사람도 있구나’하는, 작은 보탬이 됐으면 하는 마음으로 책을 냈어요. 책에 포함된 레시피는 요리하는 데 참고하시라고 붙인 거고요. 젊은이들에게는 ‘목적을 뚜렷하게 세우고, 힘들어도 참고 견디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견디고 또 견뎌야 합니다. ‘고통’의 터널을 통과하면 어느 날 ‘축복’이 다가옵니다. 힘내시고, 절대 포기하지 마세요.”
김윤림 기자 best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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