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쓰는 도리를 모르면 학문에 명달(明達)하다는 게 모두 허명(虛名)인 것이고, 치민안민(治民安民)을 도모한다는 것도 한갓 말장난에 불과할 뿐이다.”

조선 후기의 지식인 최한기(崔漢綺·1803∼1877)는 사람 쓰는 도리, 즉 용인의 도(用人之道)를 제대로 가르치지 않는 정치학(政敎學問)은 헛된 학문이요, 말장난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사람을 쓰거나 내보내는 데에 따라 나라와 개인의 명운이 바뀌는데 “근래 공부하는 사람 중에 용인의 도로써 정치학의 근본을 삼는 자가 매우 드물다”라고도 말했다. “용인이야말로 정치의 처음이요, 끝이다(源委)”라고 본 최한기는 1200여 쪽에 달하는 ‘인정(人政)’이라는 정치학 책을 썼다.

이 책을 보면 용인의 도에는 큰 원칙이 있고, 거기에서 파생되는 작은 줄기가 있다. 사람 쓰는 큰 원칙의 첫째는 내가 먼저 다른 사람의 쓰임(爲用)이 된 뒤에 다른 사람을 쓸 수 있다(用人)는 것이다. “내가 먼저 다른 사람의 쓰임거리가 되는 방도를 행하지 않고, 다른 사람을 써서 일하려고 하면, 다른 사람이 비록 위세에 눌려 억지로 따를 수는 있겠지만” 마음에서 우러나와 일을 하려 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만물은 서로 연결돼 있고 “사람은 누구나 다 쓰임이 있기” 때문에 ‘서로 쓰임이 되는 도리’를 우선 배워야 한다는 게 최한기의 통찰이었다.

용인의 두 번째 원칙은 지도자가 인재를 보는 안목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최한기에 따르면 일에는 대소와 경중이 있는데, 일을 기획하고 운영할 수 있는 ‘맡길 인재’도 있고, 손과 입으로 익혀서 쓰임이 되는 기예를 가진 ‘부릴 인재’도 있다. 따라서 맡길 인재와 부릴 인재를 구분할 수 있는 지도자의 능력이 중요하다. 맡길 인재 중에서 특히 좋은 인재를 알아보고 데려올 수 있는 안목을 가진 이를 인사 담당하는 부서에 앉히는 게 더욱 중요하다.

박현모 여주대 세종리더십연구소장
박현모 여주대 세종리더십연구소장
최한기의 관찰에 의하면 인재쓰기에는 네 차원이 있다. 그 최선은 “사람 잘 쓰는 인재를 (인사담당자로) 데려다 놓는 것”이며, 그저 맡은 일 잘하는 인재를 지도자가 직접 그 자리에 앉히는 것은 차선의 인재쓰기다. 맡겨진 일도 못하는 자를 친인척이라 해 데려다 놓는 것은 엉터리 인재쓰기다. 그런데 그보다 더 나쁜 게 있다. 그것은 사사롭거나 안목 없는 자를 “선발하는 자리에 앉히는 것”인데, 이것이야말로 최악의 인재쓰기라는 게 최한기의 생각이었다. “직책마다 사람 잘 쓰는 인재를 앉히면(用其善用人之人) 지도자가 하는 일 없이 놀러 다녀도 조직이 잘 돌아간다는 건 예나 지금이나 통용되는 용인의 원칙인 듯하다.

이렇게 볼 때 세종은 정치학을 제대로 배우고 실천한 임금이었다, 즉위한 이후에도 그는 무려 4년여 동안 쓰임(爲用)에 대해 배우고 실천했다. 상왕통치 기간에 그는 부왕의 중요한 결정을 존중하고 따르는 ‘국왕으로서의 쓰임’에 충실했다. 매일 같이 부왕께 나아가 여쭙고 상의했다는 실록의 기록은 그가 얼마나 철저히 국왕 수습(修習) 과정을 거쳤는지를 보여준다. 세종은 또한 맡길 인재와 부릴 인재를 잘 구분해 썼을 뿐만 아니라, 인재 보는 안목을 가진 허조를 이조판서에 임명해 오랫동안 인사를 담당하게 했다.

세종이 실천한 ‘용인의 도’ 중에서 지금의 지도자들이 놓치지 말아야 할 게 하나 더 있다. 그것은 인재를 뽑고 배치해야 하는 기준, 즉 취사(取捨)의 준적(準的)이다. 최한기가 보기에 옛사람들의 용인술은 거개가 권모술수를 칭찬하거나 일의 결과를 가지고 억지로 꿰어맞춘 이야기가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사람 쓰는 공부야말로 “물리에서 널리 증거를 찾고, 인정에서 많이 증험한 다음” 스스로의 준적을 세워야 하는 가장 중요한 배움의 대상이고, 실록은 그 충실한 기록이다. “마치 기계를 쓰는 것과 같아서, 쓰는 사람의 실력에 따라 천차만별로 달라진다”는 그의 용인술이 자못 궁금해진다.

여주대 세종리더십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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