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

‘강한 적’과 ‘위험한 적’이 있다면 어느 적이 더 무서울까. 당연히 ‘위험한 적’이다. 북한은 우리에게 ‘위험한 적’이지 ‘강한 적’은 분명 아니다. 경제력을 바탕으로 형성되는 유무형의 군사력에서 북한은 우리의 상대가 되지 않은 지 오래다.

남과 북의 경제력은 정확하게 1974년 역전됐다. 1972년 7·4 공동성명을 계기로 북한은 당분간 분단체제를 선호하는 ‘분단주의’로 가는 듯했다. 하지만 이때부터 북한은 추월당한 국력 차와 역전된 밀리터리 밸런스를 상쇄할 수단으로 핵무기 개발을 서둘렀다. 그리고 정확하게 2006년 첫 핵실험으로 잠재적 핵보유국의 의지를 과시했고, 2016년에 소집된 북한 노동당 7차 대회는 사실상 비공식적 핵보유국으로 선언했다.

15일 문재인 정부 들어 처음 발간된 ‘2018 국방백서’에는 북한을 적으로 규정한 문구가 삭제됐다. 그뿐 아니라, ‘킬체인(Kill Chain)’ ‘대량응징보복(KMPR)’ 등의 용어도 간데없다. 결론부터 말하면, 현 정부는 국방백서에서 ‘북한군(軍)은 적’이라는 주적(主敵) 개념을 뺀 데 대해 분명히 후회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북한군은 왜 ‘위험한 적’인가.

우선, 현재 북한군은 지구상 최악의 빈곤사회에서 가장 굶주리는 폭발 전야의 집단이다. 8년여 전, 김정일 국방위원장 시대에만 해도 북한군은 ‘선군정치’ 그늘에서 그럭저럭 우대받는 집단이었다. 식량을 비롯해 무기 생산, 후방 공급 등에서, 북한군은 관성이 고갈되는 북한식 사회주의의 끝자락에서 그 열매를 독식하는 유일한 수혜 집단이었다. 하지만 유엔과 미국의 제재와 압박이 가중되는 엄혹한 현실에서 지금 북한 군대는 평양 정권에 감내하기 어려운 ‘짐’이 되는 동시에, 먹을 것을 찾아 총을 들고 언제 병영을 뛰쳐나올지 모르는 ‘도적 무리’로 바뀌었다.

다음으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노골적으로 군부를 하대하면서 군부 엘리트들을 자극해 언제 쿠데타가 일어날지 모르는 ‘총대의 분노’가 평양을 엄습하고 있다. 현재 북한군의 군정권자인 인민무력상 노광철 대장은 겨우 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 자리에 머물러 있다. 그전 박영식 무력상 때만 해도 당연히 정치국 위원이었는데 한 등급 더 내려앉은 것이다. 불과 1년 전 이명수 총참모장 직급 현역 차수 계급장을 마지막으로, 현재 북한군 현역에는 차수가 단 1명도 없다. 북한군 사단·여단장 160여 명 중 소장, 즉 장성이 된 비율은 10%도 안 되고, 모두 대좌가 수행하고 있다. 여기에 새로 편성된 특수작전군이란 특수부대 군종의 군인들은 제대 후 장마당 경제에서 무서운 ‘조폭’이 돼 사회 갈등의 원흉으로 군림하고 있다.

총구를 겨눌 적이 없는 군대도 군대인가. 대적관(對敵觀)을 상실한 군인들이 과연 유사시 목숨을 내던지고 싸우겠는가. 물론, 우리는 지난해 9·19 남북 군사합의로 상당한 군사적 신뢰의 기반을 조성했다. 그러나 북한은 아직 핵무기를 내려놓을 것을 한 번도 진정으로 천명한 바 없다. 북한이 주장하는 ‘조선반도 비핵화’는 주한미군 철수까지도 포함한다.

국방백서의 주적 개념 삭제는 국제사회가 북한의 비핵화 종결을 선언할 때 우리의 입에서 동시에 나와야 할 중차대한 사항이다. 국군의 군사력이 압도적이고 우리의 주권 수호 의지가 확고할 때 문 정부의 평화 프로세스도 탄력을 받을 것이다. 반대로, 우리가 부드러워지면 북한은 분명 딴 꿈을 꿀 것이다. 주적 개념을 슬쩍 끌어내린 국방 정책 당국자들은 역사 앞에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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