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사에서 중세는 ‘암흑기’부터 ‘황금기’까지 관점과 해석의 스펙트럼이 아주 넓다. 먼저 떠오르는 단어는 마녀사냥이나 봉건제 같은 부정적인 것들이다. 고대는 서양 문명의 원형을 제시한 창조적 시대로, 근대는 시민사회를 이룬 진보의 시대로 보는 긍정적 평가와 대비된다.
서양사 특히 중세사에 밝은 유희수 고려대 사학과 교수가 쓴 이 책은 ‘교황과 교회’ ‘성직자와 기독교’ 등 사회·종교 등 지배문화는 물론 ‘음식과 옷’ ‘가족과 성’ 등 일상적 삶의 세계를 들여다 보면서 중세의 낯선 풍경을 복원해 준다. 중세가 천년을 지속했다는 것은 그만큼 다양하고 이질적인 요소들이 결합된 문화를 이룩했다는 걸 말해준다. 다른 시기와 마찬가지로 중세는 빛과 어둠, 아름다움과 추함이 뒤섞인 복합적인 시대였다. 또 로마적·게르만적 다양성을 기독교적 단일성으로 묶어 유럽 의식과 문화를 잉태해 유럽을 분만한 자궁이었다. 중세가 없었다면 오늘날 유럽연합(EU)도 불가능했다. 저자는 구체적인 사료와 생생한 예화를 통해 합리주의적 근대가 지우고 왜곡한 중세의 낯선 풍경으로 안내하며, 잃어버린 세계를 되돌아볼 수 있게 한다. 504쪽, 2만3000원.
엄주엽 선임기자 ejyeob@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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