람세스 왕의 제빵소 고분벽화. 왕들의 재산을 낱낱이 그려 놓음으로써 저 세상에서도 영원한 부를 향유할 수 있도록 왕의 재산 목록 중 하나인 제빵소도 그려 놓았다.  자료사진
람세스 왕의 제빵소 고분벽화. 왕들의 재산을 낱낱이 그려 놓음으로써 저 세상에서도 영원한 부를 향유할 수 있도록 왕의 재산 목록 중 하나인 제빵소도 그려 놓았다. 자료사진

- 육천 년 빵의 역사 / 하인리히 E 야콥 지음, 곽명단·임지원 옮김 / 우물이 있는 집

기원전 4000년경 등장부터
6000년 인류史 거시적 통찰

로마 황제 는‘빵 여신’ 모시고
나폴레옹은 식량난으로 망해
빵, 역사적 사건의 중요 잣대

세상이 아무리 변한다 해도
식량은 ‘인간의 삶’에 근원


“빵이 부풀어 오르고 있네.” 프랑스 혁명 전야, 바스티유를 습격하기 몇 달 전부터 파리 민중이 주고받기 시작한 인사말이다. 실제로 부풀어 오르는 빵은 없었다. 대기근으로 어디서도 빵을 구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저 사람들은 현실에 대한 희망을 인사말로 대신할 뿐이었다. 실제로 부풀어 오르기 시작한 건 사람들의 분노였다. 당시 군중은 모양이 정해지지 않은 빵 반죽과 같았다. 그리고 선동가들은 이 반죽이 부푸는 데는 효모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효모란 사람들의 피를 끓게 할 소문이었다. 사실이든 거짓이든 이런 소문이란 가장 굼뜨고 둔한 사람의 마음속에도 반항심을 심기 마련이다.

사람들의 분노를 부풀어 오르게 한 소문 중 하나가 상인들의 비밀 조직이 정부와 결탁해 기근을 일으켰다는 음모론이었다. 이 비밀 조직은 프랑스 각지에서 싼값에 곡물을 사들여 외국으로 몰래 수출한 뒤 다시 프랑스에 들여와 원래 가격의 10배 비싸게 판다는 것이었다. 루이 15세는 대기근 협정에 가담해 1000만 파운드를 대가로 받았다는 말이 빠르게 퍼져 나갔다. 결국 곡물 음모설과 이에 대한 군중의 분노는 부풀어 오를 대로 부풀어 올라, 1789년 7월 1일 시민들로 하여금 바스티유 감옥으로 돌진하게 했다.

6000년 빵의 역사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 중 하나다. 프랑스 혁명을 일으킨 것은 바로 빵이었다는 말이다. 서양의 빵은 우리에겐 밥이고, 밥은 곧 생명줄이니 개인의 행복도, 사회의 발전도, 정권의 행방도, 세계사의 흐름도 빵에 달린 것은 당연한 일이다.

당대 유명한 시인이자 소설가였고, 베를린 최대 신문 ‘센트럴 유러피언’의 편집장을 지닌 하인리히 E 야콥(1889~1967)은 이렇게 우리 삶의 알파요, 오메가인 빵의 6000년 역사를 방대한 사료를 토대로 풀어냈다. 책은 1944년 저작으로 당시로선 정치 중심의 거시사가 아니라, 빵이라는 미시 생활사 그 자체만으로도 남다른 결과물이었다. 요즘이야 미시사나 생활사, 특히 음식 관련 인문·역사서도 넘쳐나는 상황이지만, 인류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와 얽히고설킨 빵의 방대한 6000년 역사는 여전히 옆에 두고 참고할 텍스트다.

736쪽에 이르는 분량부터 독자의 기를 꺾는 책은 선사 시대 수렵 채취하던 인류가 어떻게 씨를 뿌리고 곡식을 심기 시작했는지를 추적하면서 시작해 기원전 4000년경 고대 문명에서 빵 비슷한 것을 만드는 데에서 본격적인 빵 역사탐험에 들어간다. 인류 문명의 시간을 죽 따라가며 인류 문명의 흥망성쇠를 결정한 것은 다름 아닌 빵이라는 것이다. “나는 생명의 빵이다. 나에게 온 사람은 결코 굶주리지 않을 것이다”고 했던 예수는 빵의 신이 됨으로써 세상을 지배할 수 있었다. 아우구스투스에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까지 로마의 황제는 모두 빵 여신을 모시는 엘레우시스 교도였고, 로마 시대 제빵사는 공무원이었고, 황제는 빵의 왕으로서 빵을 배급하는 제빵사 길드의 수장이었다. 이들은 빵으로 통치했고, 빵으로 세계를 정복했다. 반면 나폴레옹은 러시아 공격 당시 최악의 식량난을 겪으면서, 결국 빵으로 망했다. 미국 남북전쟁의 경우 면화 생산지인 남부와, 빵 재료인 밀 생산지인 북부라는 조건만으로도 이미 전쟁의 향배는 결정된 것이라고 했다. 이렇게 빵이 어떻게 인류 역사의 주요 사건의 방향을 갈랐는지를 살피는 책은 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세계 식량의 곡식 보급 기지, 말하자면 빵의 보급 기지가 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저자의 결론은 빵이 전쟁을 일으키기도 하지만 결국 평화를 가져올 수 있는 것은 빵이고, 빵이야말로 평화라고 했다. 두 차례 전쟁을 거치며 인류 전체가 배고픔의 공동 기억을 거친 직후였기에, 빵에 대한 당대의 의미는 남다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실제로 1938년 나치가 빈을 급습해 오스트리아 지식인 150명을 체포할 당시 체포돼 다카우 부켄발트 강제 수용소에 수감된 저자 역시 그곳에서 감자가루, 콩, 톱밥으로 만든 쇠맛이 나는 빵을 먹은 경험을 갖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절박한 ‘빵의 역사’다. 그로부터 70년 가까이 지난 지금, 우리에게 빵은 무엇일까. 바꿔 말해 우리에게 밥은 무엇일까. 아주 많은 것이 바뀌었어도 삶의 근본이라는 것, 그것은 바뀌지 않는 사실이다. 736쪽, 2만4000원.

최현미 기자 chm@munhwa.com
최현미

최현미 논설위원

문화일보 /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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