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북핵 게임이 연초부터 탈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지난 18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특사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을 만난 뒤 워싱턴의 기류는 싱가포르 1차 미·북 정상회담 이전과는 사뭇 다르다. 특사 접견 직후 새라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은 “2월 말에 2차 정상회담을 열 예정”이라고 밝혔다. 격식과 절차가 중시되는 외교안보 사안조차 거리낌 없이 떠벌리는 트럼프 대통령이 갑자기 신중 모드로 바뀌었다.
샌더스 대변인은 “미국은 최종적이고 완전하고 검증 가능한 비핵화(FFVD)를 볼 때까지 제재와 압박을 지속할 것”이라고 강조했지만, 의미 없는 후렴에 불과하다.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와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은 스웨덴 스톡홀름 외곽에 있는 휴양시설 하크홀름순드 콘퍼런스에서 사흘간 두문불출한 채 ‘합숙 담판’을 벌였다.
때마침 뉴욕타임스(NYT)는, 미·북 고위급회담에서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김 부위원장에게 핵연료 물질 및 핵무기 생산 동결을 타진했다고 보도했다. 폼페이오 장관은 언론 인터뷰에서 “우리는 그 위험을 줄이고 북한의 (핵·미사일) 프로그램 구축 능력을 줄이길 원한다”고 말해 2차 미·북 정상회담에서 집중 논의될 가능성을 내비쳤다. 핵연료와 핵무기 생산 동결은 영변 원자로와 고농축우라늄(HEU) 제조시설 가동 중단과 함께 핵탄두를 실을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생산 공장의 가동 중단을 의미한다. 트럼프 대통령으로선 미 본토 안전, 김 위원장은 제재 완화를 성과로 내세울 수 있는 카드지만, 한국으로선 북핵 위험을 계속 안고 가야 하는 최악의 시나리오다.
김 위원장이 중국 방문 이후 강공 카드를 제시한 데 대해 미국이 기존 입장에서 물러서는 모습이다. 김 위원장은 “새로운 길을 가지 않을 수 없게 될 수도 있다”고 한 신년사 표현처럼 2차 미·북 정상회담에 승부수를 띄우고 있다. 북핵은 과거·현재·미래의 핵으로 구성돼 있다. 영변 핵시설은 현재와 미래의 일부 핵에 불과하다. 주일미군사령부(USJF)가 지난달 18일 공개한 유튜브 홍보 영상에서는 북한을 최소 15개의 핵무기를 보유한 핵보유 선언국으로 적시했다. 북한은 올 신년사에서 핵 추가 제조·실험·사용·거래를 않겠다며 사실상 핵보유국의 주체이지 핵 폐기의 객체가 아니라고 선포했다.
북한이 은닉해 놓은 플루토늄과 농축우라늄은 신고·사찰 및 검증을 통해서만 진실이 밝혀질 수 있다. 핵의 부분적인 동결은 세계 비핵화 역사에서 유례가 없다. 모든 핵을 포기하는 이란 핵 협상도 불완전하다며 협상 파기를 선언한 트럼프 대통령이 ‘스몰딜(small deal)’로 북핵 폐기의 성과를 과시하겠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북한이 핵 동결로 제재 완화의 목적을 달성한다면 사실상 북한 비핵화는 물 건너간다. 결국, 북한은 파키스탄의 핵보유 모델을 벤치마킹할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미국민의 안전 최우선을 내세워 ICBM 폐기 등에 집중하며 핵 동결 선에서 협상할 경우 한국은 북한의 핵 위협에 무방비로 노출된다. 핵 동결 대가로 제재를 완화하고 ICBM 폐기에 주한미군 감축이 본격화할 경우 한반도에는 핵보유국 북한과 재래식 무기국 한국만 남을 것이다. 시간 싸움에서 북한에 약점을 노출한 트럼프 대통령의 북핵 리얼리티 쇼는 고스란히 한국의 안보 불안으로 연결될 수밖에 없다. 미국이 핵 동결 타협은 미봉책이지 해결책이 아님을 인식하는 데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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