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징용재판 독대 문건 등
‘범죄혐의 소명’ 결정적 역할
‘후배탓’ 증거인멸 심증키워
‘판사들 추가 영장청구 막자’
법원의 ‘고육지책’ 가능성도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을 수사한 검찰의 ‘창’과 의혹의 정점으로 평가받던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방패’가 맞붙은 구속영장심사에서 검찰이 24일 판정승을 거뒀다. 법조계에서는 혐의를 부인하는 양 전 대법원장 측의 전략이 역효과를 낸 반면, 중간고리를 배제한 채 양 전 대법원장의 직접 지시 혐의를 겨냥한 검찰의 전략이 효과를 거뒀다는 평가가 나왔다.
신봉수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장 등 수사 핵심 인력을 투입한 검찰은 양 전 대법원장이 주도적으로 재판의 공정성과 독립이라는 헌법 가치를 훼손한 만큼 구속 수사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특히 ‘강제징용 재판 관련 김앤장 변호사 독대 문건’ ‘판사 블랙리스트 관련 직접 V 표시를 했다는 기안 문건’ ‘대법원장의 지시임을 유추할 수 있는 大(대) 표시를 한 이규진 부장판사 수첩’ 등 직접 물증을 제시한 게 영장 발부에 주효하게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임종헌 법원행정처 차장-박병대·고영한 대법관-양승태 대법원장’으로 이어지는 지시·보고 관계의 연결고리가 아니라 이 같은 물증을 통해 ‘양 전 대법원장이 범죄를 스스로 기획하고 실행한 핵심 행위자’라는 주장을 부각시켰다는 얘기다. 특히 검찰의 이 같은 전략 수정에는 지난해 12월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에 대한 구속영장을 법원이 “공모 관계가 부족하다”며 기각했다는 사실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전해졌다.
반면 양 전 대법원장의 경우 후배 판사들의 진술과 증거들이 왜곡됐다는 발뺌 전략이 자충수가 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양 전 대법원장은 자신에게 불리한 진술을 내놓은 후배 법관이 거짓 진술을 하는 것이라고 주장하거나 이 부장판사의 수첩 증거가 왜곡됐을 가능성을 제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이 오히려 ‘증거인멸’ 우려에 대한 심증을 강하게 했다는 분석이다. 더욱이 사법연수원 25기수 후배인 명재권 영장전담 부장판사 앞에서 ‘후배 탓’을 한 전략도 좋지 못했다는 평가다.
일각에서는 법관탄핵과 특별재판부 구성 등을 주장한 더불어민주당과 진보성향 시민사회단체의 압박이 법원으로 하여금 정무적 결정을 내리도록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구속영장을 기각하면 국민적 차원의 비판에 직면할 게 분명한 상황에서 사법부 신뢰 회복을 위해 전직 사법부 수장을 구속하는 고육지책을 택했다는 분석도 있다. 의혹의 ‘정점’으로 여겨지는 양 전 대법원장에 대해 구속영장을 발부함으로써 다른 법관에 대한 추가 구속영장 청구를 막겠다는 취지가 있다는 평가도 있다.
이날 구속영장이 기각된 박 전 대법관에 대해 검찰 측이 “박 전 대법관에 대한 더 이상의 구속영장 청구는 없을 것”이라고 말한 부분도 이 같은 평가에 힘을 싣는다. 검찰은 지난해 12월 이후 박 전 대법관에 대한 두 번째 구속영장을 청구했으나 법원은 이번에도 구속 사유가 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김수민 기자 human8@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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