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투표·감사위원 분리선출
세계 유례없는 지배구조 규제
행동주의 펀드 공격 판깔아줘
창업때 외부자본 받는 벤처는
경영권 방어문제 불리할수밖에
창업주에 ‘주당 10배 의결권’
구글·페북 등 美 기업과 대조
기업에 미치는 행동주의 펀드 폐해가 큰 데도 우리나라는 혁신 기업가의 경영권을 보호해줄 차등의결권 등 경영권 보호 장치를 사실상 전혀 두고 있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진단이다. 혁신 기업을 키워 봐야 ‘투기 자본의 먹잇감’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런데도 정부와 여당은 투기 펀드의 영향력 강화 효과를 극대화할 것으로 우려되는 ‘상법’ 개정안을 오는 2월 국회에서 밀어붙일 태세여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재계 고위 관계자는 24일 “혁신 기업은 창업 단계부터 다양한 형태의 외부자본을 지원받는데, 경영권 확보가 목적인 투기자본도 당연히 참여한다”면서 “혁신 기업가가 경영권 방어 문제에 휘둘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자본력이 취약할 수밖에 없는 혁신 기업이 차등의결권을 도입하는 것은 이미 세계적인 추세로 자리 잡고 있다. 2014년부터 2017년 8월 말까지 기업 공개를 한 세계 29개 유니콘 기업(기업 가치가 1조 원 이상의 비상장 창업 기업) 중 44.8%인 13개사가 차등의결권을 채택했다. 이들 회사는 주식에 10대 1의 차등을 둬서 창업주가 안정적인 의결권을 확보하도록 하고 있다.
최근 기업을 공개한 중국 알리바바는 차등의결권을 보장하는 미국 뉴욕 증시에 상장했고, 홍콩증권시장은 자국의 샤오미 상장을 놓치지 않기 위해 차등의결권 제도를 도입했다.
혁신 기업의 아이콘인 미국 구글과 페이스북은 창업주에게 주당 10배의 의결권을 부여하고 있다. 페이스북만 해도 보통주를 A, B주로 나눠 B주에는 주당 10주 의결권을 부여하고 있다. 창업자인 마크 저커버그는 B주를 5억 주 가까이 보유하고 있다.
이에 반해 국내는 혁신 창업가를 옥죄는 규제만 밀어붙이고 있다. 국회에 계류 중인 상법 개정안은 ‘집중투표제’ ‘감사위원 분리 선출’(감사위원 선임 시 대주주 의결권을 3%로 제한) 등 전 세계 유례없는 ‘역주행 지배구조 규제’ 내용을 담고 있다. 행동주의 펀드에 절대적으로 유리한 내용이어서 앞으로 국내 자본시장은 행동주의 펀드의 ‘텃밭’으로 전락할 것이라는 우려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행동주의 펀드의 공격 대상은 근래 들어 아시아와 혁신 기업으로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 행동주의 펀드의 아시아 기업에 대한 공격 성공률은 2015년 46.7%로 1년 만에 무려 17.1%포인트나 증가했다.
혁신 기업의 산실인 미 실리콘밸리 15대 기업 중 행동주의 펀드의 경영권 공격을 경험한 비율은 2016년 현재 70%를 웃돌았다. 2006년만 해도 30%를 밑돌았으나 10년 사이에 무려 2배 이상으로 늘어난 것이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집중투표제의 경우 일본이 1974년에 의무화 규정을 폐지하고, 미국 역시 5개 주를 빼면 의무화 규정을 폐지한 후진적인 제도”라며 “감사위원 분리 선출도 전 세계적으로 사례가 없는 제도”라고 지적했다.
유환익 한국경제연구원 혁신성장실장은 “기업의 장기적 발전을 통한 진정한 주주가치 제고를 위해서는 장기보유 주주에 대한 인센티브 강화, 차등의결권 도입 등 국내외 행동주의 펀드에 대한 대책을 본격적으로 논의해야 할 때”라고 제언했다.
이관범 기자 frog72@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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