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곤 가천대 교수·정책학 前 행정안전부 장관

대선 구호는 득표用 상징 무늬
권력을 획득하면 낙관론 팽배
집단사고 빠져 문제점 도외시

이미 최저임금과 탈원전 심각
통합지성으로 취약성 메우고
3년 차 맞아 정책 재검토해야


정치는 표(票)다. 지지율은 생명선이다. 시원해야 표가 몰린다. 그래서 새로운 세상을 설파하고, 적폐라고 쳐부순다. 사안마다 이미지를 입히고 지지하는 집단의 수를 세어서 표를 추가하기에 급급한 정치산술(political calculus)이 잘 팔리는 정쟁의 시대다. 문제는 국가정책을 펼칠 때도 이 표몰이 정치산술이 앞장을 서는 경우, 정책 결과가 대실패로 종결된 사례가 너무나 많다는 점이다. 정책의 입구는 현재의 표심이지만, 출구는 미래의 상처투성이 성과이기 때문이다.

더 심각한 상황은 표의 정치산술이 만연할 때, 동질적 정책 수행자들이 응집해 폐색전선(閉塞前線)으로 대오를 짜 맞춘 경우다. 성급하게 만들어진 대선 구호는 그 정치집단의 표몰이용 무늬 합의에 불과하다. 큰 표차로 권력을 획득하면 낙관론이 지배한다. 집행 경험이 없는 개념 전문 집단이 공약을 정책화하는 과정에서 상징적 무늬가 실체로 변질된다. 첫 고위직 인사와 정책에 시동이 걸릴 땐 대통령은 절대권력이다. 이념이라는 광배 밑에서 핵심 정책을 다시 뜯어보기는 어렵다. 용기 있는 사람도 소극적 질문에 그친다. 사명감 높은 인사도 안락한 무반응으로 자신의 입지를 공고히 하려 한다.

이것이 대통령중심제 국가에서 흔히 보이는 대통령 주변의 집단사고다. 문제가 있는 측면은 부각되지 않고 정보는 선택적으로 흡수된다. 비판은 ‘왕따’로 연결되기에 방관자증(傍觀者症: spectatoritis)은 응집력을 강화시킨다. ‘대통령의 국정 철학’이라는 마그마에 다가가는 접착성을 보여주지 못하면 태양의 신뢰를 얻지 못한다. 선거 때 무늬 합의는 바로 최정점의 국가정책이 되고, 사전에 동질적인 언론인들로 구축된 전파 기제(메커니즘)는 이를 국민에게 실어 나른다. 1만 원 최저임금, 탈(脫)원전, 또 다른 몇 개가 이렇게 탄생하지 않았기를….

최저임금은 표몰이 정치 방정식에서는 표 값이 나가는 대표적인 무늬 정책이다. 한데, 그 파급력에 비하면 정책 결정 과정과 구조는 허술하기 짝이 없었다. 정부나 국회가 결정하는 것도 아니다. 최저임금위원회가 그 파장을 제대로 분석하고 예견할 수 있는 구조와 역량을 갖춘 곳도 아니다. 검토 시간도 짧다. 밀고 당기고, 퇴장하는 과정에서 값이 결정된다. 최저임금위원회는 책임 소재가 없는 묘한 곳이다. 재작년엔 11번, 작년엔 15번 전원회의가 열렸다곤 하지만, 파국을 피해 투표로 결딴낸 곳이다. 장관도, 청와대도 그대로 수용했다. 탈원전은 그야말로 무늬 정책이 대통령의 명령으로 곧바로 실행된 경우다. 건설 중단에다 해체가 정책의 핵이 됐다. 안전이 핵심인데 해체로 가버린 것이다. 해체와 좌파는 동의어인가?

두 정책 모두 불가역성이 특징이다. 최저임금은 내려올 수 없다. 대학 원자력학과가 무너지면 이 나라 주요 산업이 무너진다. 몇 나라 조선산업이 그래서 망했다. 효과가 장기화하는 정책을, 표몰이 정치산술의 우산 속에서, 폐쇄적 동질 집단이 태양만을 우러러보며 밀어붙일 때, 그들은 행복하다. 꿀맛이다. 그 콩깍지 때문에.

경제나 기술기반 정책의 경우 전문성을 무시하면 정책이 시행 단계에서 표류하거나 국민적 부담으로 끝난다. 정책 기준에 따라 종합적으로 검토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이미 정치적으로 답이 정해진 곳에, 세종시에 모여 있는 관료집단이 나설 까닭이 만무하다. 통합지성(collective intelligence)이 이념의 콩깍지 탓에 작동하지 못했다. 통합지성은 다른 견해와 소통할 때 가능하다. 진정 통합을 지향한다면 표몰이 산술 정치를 잠시 거두고, 총애하는 집단 바깥에 있는 이질적 집단과 소통해야 한다.

작금 최저임금의 경우 그 결정 구조와 책임 소재를 좀 더 강화해 보려는 시도가, 탈원전의 경우 정책 악마(devil’s advocate)의 탈을 쓴 선(善)한 의인이 고뇌하다 입을 열었다. 최저임금이 경제 환경이 한층 악화하는 상황에서도, 탈원전이 국제원유가가 배럴당 80달러를 웃돌 때도 지탱 가능한지를 재검토하면 된다. 스트레스 테스트가 필요하다. 국가의 취약성(vulnerability)을 보강하는 것이 정치의 근본이기에.

이왕 집권 3년 차 문제를 점검한다면, 다른 몇 정책에 대해서도 종합적인 검토가 필요하다. 제대로 된 구조에서 적절한 과정을 거쳤는지? 장기정책을 서두르다 무늬 정책에서 바로 굳혀버리지는 않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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