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화한 마음 / 전중환 지음 / 휴머니스트

사회진화론·성차별 정당화 등
진화심리학 둘러싼 오해 해명


이번 주 북리뷰의 머리기사인 ‘진화의 배신’이 인류의 생존이 뇌보다는 몸, 특히 유전자 형질의 진화와 적응 덕분이라는 걸 전제로 한다면, 이 책은 생존의 문제를 뇌의 진화에 무게를 놓고 진화심리학을 말한다. ‘오래된 연장통’과 ‘본성이 답이다’ 등의 책으로 현대인의 일상과 사회적 현상을 진화심리학의 눈으로 분석해온 저자는 이번 책에서 다소 왜곡돼 전달된 진화심리학 이론의 전반과 최신 연구 동향을 다양한 사례로 다룬다.

진화심리학은 그 시작인 서구뿐 아니라 뒤늦게 들어온 국내에서도 아직 오해와 의구심에 휩싸여 있다. 이것이 사회과학적으로 갔을 때, 예컨대 일제강점기에 힘이 세상을 지배한다는 ‘자연선택’ 논리에 따라 친일·매국으로 나타난 사회진화론과도 혼동된다. 개인적으로는 ‘내가 어찌할 수 없다’ ‘타고난 것이다’는 논리로 간다. 다른 한편에선 근래 주목받았던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처럼, 마치 인간은 결국 이기적인 생명체라는 식으로 저자가 의도하지 않은 방향으로 이해된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 여성혐오 등 성차별주의를 정당화하는 데 진화심리학이 쓰이는 경향은 우려할 만하다.

저자는 인간의 마음 역시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의 산물’이라는 걸 전제하지만, 마음이 어떠한 목적을 수행하게끔 만들어졌는지 안다면 인간의 다양한 심리 현상을 하나의 원리로 통합해서 설명할 수 있다고 본다.

예컨대 자연선택으로 마음이 진화했다는 의미는 우리의 마음이 외부 세계를 있는 그대로 정확히 인식하게끔 설계되지 않았다는 걸 뜻한다. 저자가 그런 얘기를 하진 않지만, 현대 철학이나 불교의 인식론도 이와 비슷하다. 외부 세계를 정확하게 인식하는 게 생존과 번식에 유리한 경우에만 자연선택은 우리가 실재를 정확하게 인식하게 진화했다. 그 반대의 경우라면 자연선택은 주저 없이 왜곡을 선택했다. 인류가 살아오면서 높은 곳에서의 추락은 곧 죽음이기에 수평보다 수직을 더 길게 인식하는 수직-수평 착시, 맹수의 위험을 감지하기 위해 멀어질 때보다 다가설 때 소리를 더 위험하게 느끼는 청각 편향 등의 왜곡이 심리적 적응의 결과다.

그뿐 아니라 외부인에 대한 혐오나 폭력범죄를 유발하는 분노, 패거리주의, 폭식, 포르노그래피, 족벌주의 등 현재 우리 사회의 문제들도 진화심리학의 입장에서 설명이 가능하다. 인간이 자연선택을 통해 갖게 된 그런 모습이 신이나 우주의 섭리 혹은 역사의 운행 법칙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긴 세월 속에서 진화적으로 만들어진 것일 뿐이다.

다른 과학과 마찬가지로 진화심리학은 인간 행동이라는 연구 대상을 설명할 뿐, 연구 대상을 정당화하지는 않는다. 자연적인 현상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의 목적이 그 현상을 정당화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인 것과 같다. 당위나 의무는 없는 것이다. 진화심리학은 우리의 뇌가, 호르몬이, 이성과 감정이 왜 하필이면 그런 식으로 작동하는지 근본적인 원인을 알려준다. 인간 본성을 한 발 더 떨어져 차분히 조망할 수 있는 진화적 시각을 제시해준다. 더 나은 삶과 세상을 위해 우리는 얼마든지 본성을 거스를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의 ‘진화한 마음’이 어떤 기능을 하게끔 설계된 것인지 안다면 인간 본성의 어두운 문제를 다루는 데 길잡이가 될 수 있다. 432쪽, 2만1000원.

엄주엽 선임기자 ejyeob@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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