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가 굳이 소설의 탄생 과정까지 알 필요는 없겠지만, 황정은 작가의 연작소설집 ‘디디의 우산’에 접근하기 위해선 약간의 배경 설명이 필요하다. 이번 작품은 ‘d’와 ‘아무것도 말할 필요가 없다’의 중편 2편이 연작 형태로 묶인 것이다. ‘d’는 김유정문학상 수상작으로, 처음 발표 당시 제목은 ‘웃는 남자’였고 ‘아무것도 말할 필요가 없다’는 ‘문학3’ 웹에 연재해 뜨거운 반응을 얻었던 작품을 대폭 고쳐 쓴 것이다. 소설집의 제목인 ‘디디의 우산’은 황 작가가 2010년 발표한 ‘파씨의 입문’ 속 단편의 이름이다. 즉 9년 전 단편 제목이 연작소설집의 타이틀로 확대됐고, 작품 속 어릴 적 친구로 등장했던 주인공 도도(d)와 디디(dd)는 이번 중편에서 하나의 제목(‘d’)으로 성장한 것이다.
첫 번째 중편 ‘d’에는 친구 dd를 잃은 한 남자 d가 등장한다. dd의 죽음 이후 자신도 죽음 같은 날들을 보내던 d는 청계천 세운상가에서 고된 물류 일을 하면서 하루하루를 버틴다. 그러다가 그곳에서 수십 년간 음향기기 수리를 해온 여소녀(이름 때문에 아이들에게 놀림을 많이 받았던 중년 남자)를 만나면서 다시 조금씩 세상 속으로 들어간다.
사실 이야기 자체엔 대단한 사건이나 전환이 없다. 누구에게나 있을 법한, 아끼는 사람과의 뜻하지 않은 이별과 슬픔, 그로 인한 한동안의 고통과 방황, 그리고 우연한 만남을 계기로 한 삶의 변화 등 어찌 보면 지극히 평범한 스토리가 펼쳐진다.
그러나 dd의 죽음이 2014년 4월 16일 세월호의 비극과 무관하지 않으며, 우연히 광장의 목소리를 접한 d가 오디오 진공관처럼 통렬하게 빛나는 촛불집회의 순간까지 치달음으로써 소설은 한 사람의 이야기를 넘어 사회 변혁이나 혁명의 가능성을 암시한다.
그렇게 dd의 존재가 촉발한 혁명이라는 화두는 자연스럽게 ‘아무것도 말할 필요가 없다’의 나와 동갑내기 친구 서수경에게로 이어진다. 화자인 나와 고교 시절 친구인 서수경은 벌써 20년째 함께 사는 중이다. 둘은 1996년 이른바 ‘연대 사태’가 벌어졌을 때 재회했고, 고립과 폭력으로 운동과 일상의 격리가 이뤄진 그날 이후 어른이 된다는 것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해왔다. 소설은 2014년 이후 지난 5년간 우리에게 발생한 혁명적 사건을 정면으로 다루지 않는다. 하지만 우연과도 같은 필연, 회상과 상상을 통해 애도와 분노의 현장을 냉정하게 더듬는다. 여기까지 오는 데 5년이 걸렸다. 그러나 작가의 말처럼 “세상은 변한 것처럼도 보이고 변하지 않은 것처럼도 보인다.” 340쪽, 1만4000원.
김인구 기자 clark@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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