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연초에 개최되는 세계 최대 소비자 가전쇼(CES)의 축소판 행사가 국내에서도 부랴부랴 열릴 모양이다. 지난 8∼11일 미국 라스베이거스의 ‘CES 2019’에 참가했던 국내 기업 300여 곳 중 40여 업체를 상대로 청와대가 29일부터 사흘 간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행사를 꾸리도록 했다는 것이다. ‘CES 2019’에 큰 관심을 보인 문재인 대통령이 최신 트렌드를 접할 ‘한국형 CES’ 기획을 주문한 뒤 청와대 주도 하에 일사천리로 추진됐다고 한다. 이런 사실이 보도되자 청와대는 25일 참가 기업 등이 먼저 제안했다고 공식 해명했다. 그러나 기업들 주장은 다르다.

문 정부가 혁신의 현장인 CES에 주목해 그런 기류를 국내에 전파하고, 정부 차원에서도 적극 수용하겠다는 취지라면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정반대다. 이런 졸속 이벤트가 논의된다는 사실 자체부터 민주주의 시대엔 어울리지 않는다. 또, 4차 산업혁명시대에 걸맞는 규제 개혁은 첫발도 제대로 못 떼면서, 오히려 기업 옥죄기 규제를 쏟아내는 현실과도 배치된다. 글로벌 기업부터 스타트업까지 CES를 찾는 건 그곳에 혁신과 성장의 기회가 있기 때문이다. 18만 명의 바이어가 몰린 올해 CES에선 이전에는 없던 제품·서비스·기술이 속출했고, 경쟁자들끼리도 전략적으로 제휴하는 사례들이 쏟아졌다. CES에 출품했던 제품을 국내에 재탕으로 전시한들 해외 바이어가 올 리 없다.

행사 첫날엔 정부·국회 등의 주요 관계자만 입장한다는 얘기도 나온다. 사실이라면 CES에 못 간 VIP를 위한 특혜 이벤트가 되는 셈이다. 이미 50년 동안 진행해온 한국전자전과 차별성도 없다. 기업들은 실익도 없는 일에 적잖은 비용까지 부담하면서 촉박한 시간 안에 전시 부스를 꾸며야 할 처지다. 권력 눈치를 보며 이런 이벤트를 급조하는 발상은 더 심각한 문제다. 얼마 전 글로벌 비즈니스 리더인 국내 대기업 총수들을 버스에 태워 대통령 주위에 줄 세우더니, 이번엔 민간 기업들을 졸속 행사에 함부로 동원하고 있다. 가전 신제품에 호기심이 있다면, 백화점 가전 매장에 가보는 게 낫다. 그리고 사이비 혁신 이벤트에 기업을 들러리로 내세우지 말고 규제 척결에 매진하는 게 당장 정부가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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