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일대를 졸업한 태프트는 고향인 오하이오주의 신시내티에서 로스쿨을 나온 후 할아버지와 아버지에 이어 법조계에 입문했다. 연방대법원장이 되겠다는 포부를 이루려던 노력과 열정은 사법부와 행정부를 오가며 요직을 두루 경험하는 데 원동력이 된다.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의 후원으로 공화당의 대통령 후보가 된 태프트는 마침내 유일한 신시내티 출신의 미국 대통령이 된다. 신시내티에서 태어나고 자란 그는 신시내티의 자랑이었다. 이러한 인연으로 신시내티는 온통 태프트의 물결이다. 박물관과 극장, 도로까지 태프트라는 이름이 도시에서 상호로 사용되고 있다. 2015년에 생긴 태프트 에일하우스(Taft’s Ale House)라는 양조장도 그중의 한 곳인데 최소한 신시내티에서는 식지 않은 태프트의 인기를 보여준다. 교회였던 이곳을 태프트의 이름을 딴 양조장과 레스토랑으로 변신시켰다. 술을 즐기지 않던 태프트는 도수가 낮은 맥주를 가끔 마셨다고 한다. 물론 양조장의 홍보 그림에도 욕조에 앉아 있는 콧수염이 있는 태프트의 얼굴이 나온다. 이곳은 미국 내에서 입소문을 통해 조금씩 알려지고 있는 새로운 관광명소다. 양조장답게 맥주를 생산하기도 하지만 현장에서 맥주와 음식을 판매하는데 특히 맥주 맛이 좋다고 한다. 영부인이었던 넬리 태프트의 이름을 붙인 맥주를 비롯해 다양한 종류가 있다. 아쉬운 점은 신시내티의 시민들에게 존경을 받는 태프트가 우리에게는 가슴 아픈 역사와 더불어 쓰라린 이름으로 기억되고 있다는 것이다.
일본의 11대 총리였던 가쓰라 다로(桂太郞)는 필리핀을 가기 전에 잠시 들른 미국의 전쟁장관인 태프트와 회담을 하게 된다. 여기에서 얼마 전 한반도에서 있었던 러·일 전쟁과 종전을 중재해서 노벨평화상까지 받은 시어도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대한제국이 또다시 다른 세력을 끌어들여 전쟁을 할 수 있으니 다른 열강과 조약을 맺을 수 없도록 외교권을 박탈해야 한다는 내용의 대화를 나누고 태프트도 이에 동의하게 된다. 그들에게 생존하고자 노력하던 대한제국은 귀찮고 하찮은 존재였다. 이어진 대화에서 미국은 자신들이 스페인과 전쟁을 치르면서 확보한 필리핀을 일본이 관심을 갖지 않도록 하기 위해 미국의 필리핀 지배와 일본의 한국 지배에 대해 서로 권리를 인정하고 관여하지 않기로 하고 결과를 각서로 남겼다. 이 회의가 우리에게 알려진 가쓰라 태프트 밀약이라는 미·일 로맨스다.
일본과의 짧은 회담과 필리핀 일정을 마무리한 태프트는 미국으로 돌아가 정계에서 입지를 다진다. 출마포기 선언을 한 시어도어의 적극적인 지지로 공화당의 대통령 후보가 된 태프트는 대선에서 민주당 후보를 이긴다. 그러나 전임자의 업적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태프트는 시어도어와는 방향이 조금 다른 정책을 추진하며 갈등이 생겼다. 미국 내 대표적인 친일파인 시어도어의 도움으로 대통령이 됐지만 웃기게도 시어도어의 방해로 재임에 실패한다.
술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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