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도운 논설위원

당협위 모임 찾아간 당권 주자
‘박근혜 문제’ 질문에 답 못해
민감한 사안 회피 전략인 듯

朴 탄핵 의원들 판단 존중하고
인간적·정치적 대응 분리해야
유권자 절반이 답변 기다린다


자유한국당의 서울지역 원외 당협위원장 20명 정도가 최근 저녁 모임을 가졌다. 한 달 뒤에 열릴 전당대회 얘기가 달아오를 무렵, 대표 경선에 나설 것으로 알려진 인사가 어떻게 알고 찾아왔다. 모임의 간사 격인 위원장이 두 개의 질문을 던졌다. 첫째, ‘통합’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나. 둘째,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에는 어떤 입장인가.

첫 번째 질문에 그는 세대와 계층 간의 통합을 강조했다. 특히 청년 문제의 심각성을 지적하며 세대 간 통합의 중요성을 강의하듯 답변했다고 한다. 그러나 질문자가 듣고 싶었던 것은 ‘보수 대통합’에 대한 답변이었다. 갈라진 친박과 비박을 어떻게 통합하고, 나뉜 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을 어떻게 통합할 생각인지를 듣고 싶었던 것이다. 두 번째 질문에는 의미 있는 답변을 하지 않았다. 이에 일부 참석자는 실망감을 표시하기도 했고, 반면에 답변 내용과는 관계없이 지지 의사를 밝힌 참석자도 있었다고 한다.

이 모임을 장황하게 소개한 것은 제1 야당의 옹색한 현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 두 문제를 넘지 못하면 보수 단일대오 형성이 어려운데, 당을 지휘하겠다는 사람이 왜 얼버무렸을까. 두 가지 해석이 나왔다. 먼저, 참모들이 일러준 모범답안이 있었을 텐데, 아직 ‘자기 것’으로 체화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으로 참석자들은 이해했다. 또, 박 전 대통령과의 관계 같은 민감한 사안은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는 게 유리할 것이란 전략 때문이라는 것이다. 다른 경선 주자들도 비슷하다고 한다.

2016년 말부터 촛불을 든 시위대가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여론조사에서 ‘박근혜 대통령을 탄핵해야 한다’는 답변이 75∼85%를 기록했다. 2016년 12월 9일 국회의원 300명 가운데 234명의 찬성으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고, 2017년 3월 10일 헌법재판소의 탄핵 결정에 국민 86%가 잘했다는 답변을 내놓았다. 국민의 80% 이상이 탄핵에 찬성한 것이다. 박근혜 탄핵은 ‘촛불 혁명’이 아니다. 국회 발의, 헌재 인용 등 헌법 절차가 민주적으로 이행된 결과였다. 따라서 한국당도 박 전 대통령 탄핵의 헌법적 정당성 자체는 인정해야 한다.

현재 친박·비박 간 갈등의 본질은 탄핵 국회 발의 과정의 찬·반이다. 대체로 친박은 반대했고, 비박은 찬성했다. 그 때문에 당까지 갈라졌다가 일부가 다시 합쳤다. 누구의 판단이 옳았는가. 그걸 따져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대통령 탄핵이라는 초유의 사태에 당시 의원들은 헌법기관으로서 각자의 정치적 결정을 한 것이다. 그 판단을 존중해준다는 원칙만 세우면 친박·비박 간의 갈등은 상당 부분 해소할 수 있다. 이번 전당대회가 그런 과정이 돼야 한다. 치열하고 냉철한 논쟁을 거쳐 끝을 봐야 한다.

한국당이 입장을 정리하지 못하면, 문재인 정권은 언제든 ‘박근혜 사면’ 카드를 활용해 한국당을 분열시킬 수 있다. 최근 서울구치소에 있는 박 전 대통령에게 편지를 보내는 정치인들이 꽤 있다고 한다. 일부 정치인은 지지자들을 박 전 대통령이 수감 중인 독방과 가까운 쪽으로 데려가 함께 함성을 지른다고 한다. 옥중의 박 전 대통령은 편지와 함성을 보고 들으며 무슨 생각을 할까.

한국당은 박 전 대통령에 대해 인간적인 연민을 갖고, 출소하면 도와야 한다. 그러나 당장 박 전 대통령을 복권시키려 하거나, 그에 대한 연민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 한다면 ‘정상배’일 뿐이다. 현 정권이 최근 좀 비틀거린다고 해서 ‘박 정권이 더 나았다’는 식으로 접근하는 것은, 화풀이엔 도움이 될지 모르나 다수 국민의 지지를 얻긴 어렵다. 정치적·인간적 의리는 표시하되, 박근혜·문재인 모두를 극복하는 대안을 내놔야 한다. 박근혜의 복권은 국민과 역사의 몫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5월 대통령 선거에서 얻은 득표율은 41.08%에 불과하다. 탄핵에 찬성했지만, 문 대통령을 지지하지 않은 유권자가 절반을 넘는다. 이들이 지금 한국당을 지켜보고 있다. 한국당 당권 후보들은 ‘26 & 51’ 전략을 생각하는 것 같다. 우선 보수 절반의 지지를 얻어 당권을 확보한 뒤 중도 쪽으로 외연을 확대해 유권자 절반의 지지를 얻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보수 유권자도 설득하지 못하면서 중도 유권자에게 다가설 수 없다. 한국당이 먼저 풀어야 할 숙제는 박근혜 문제다. 회피하지 말고 답을 내야 한다. 그리 어려운 문제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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