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베트남의 4강 진출은 실패했지만, 아시안컵 축구가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그런데 만약 축구 경기에서 주심이 2명이라면 어떻게 될까? 한발 더 나아가, 한 주심은 축구연맹에서 규정한 모든 규칙과 범칙 기준을 철저히 적용하는 반면, 다른 주심은 웬만한 범칙들은 모두 용인해 준다고 가정해 보자. 또 주심이 한 명인 경우에도, 어떤 경기에서는 매우 관대한 기준을 적용하고 다른 경기에서는 매우 엄격한 기준을 적용한다면, 선수들은 어떻게 경기를 풀어가야 할까?
현재 국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대기업 규제에 대한 정부와 대통령의 판단이, 앞서 가정해 본 축구 경기 주심들의 예와 매우 흡사하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5일 개최된 간담회에서 기업이 힘차게 도약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신바람 날 수 있도록 정부가 적극 협력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지난 23일에는 공정경제추진 전략회의를 주재하면서 대기업의 책임 있는 자세와 대주주에 대한 경영책임을 묻기 위한 고강도 규제 방안들을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특히, 대기업 대주주의 중대한 탈법 및 위법행위에 대해 국민연금이 스튜어드십 코드를 적극적으로 행사해야 한다는 구체적인 언급을 했다.
국민연금은 지난 1988년에 5300억 원 규모로 시작해서, 2003년 처음 100조 원을 넘어선 이후 현재는 전체 규모가 무려 637조 원에 이르는 세계 3대 연·기금으로 성장했다. 특히, 전체 기금 중에서 110조 원 이상을 국내 기업들에 투자하고 있으며, 시가총액 기준으로도 10%에 근접해 가고 있다. 개별 기업 기준으로도 국민연금이 5% 이상의 지분을 보유한 국내 기업이 이미 300여 개에 이른다.
국민연금의 세계적인 규모 대비 전문성을 기반으로 하는 주주권 행사를 준비하는 기간은 매우 부족했다. 2015년 처음으로 한국기업지배구조원 주도로 운영 기준을 만들기 시작해 2016년 12월 ‘기관투자가의 수탁자 책임에 관한 원칙’을 공표했으며, 스튜어드십 코드 관련 법령 해석집 배포를 거쳐서 2018년 7월 공식 도입했다. 그뿐만 아니라, 현재 600조 원이 넘는 자산을 책임지는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은 자산운용에 대한 전문성이 부족한 여당 의원 출신이고, 국민연금의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기금운용위원회 위원장은 보건복지부 장관이 겸직하고 있고, 차관 4명도 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주주권 행사에 대한 분명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것이 어떤 파장을 초래할지 걱정이다.
국민연금처럼 대규모 자산을 운용하는 기관투자가들이 보유 주식에 대한 적극적인 의결권을 행사하는 스튜어드십 코드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전제조건이 필요하다. 첫째는 주주권 행사 여부를 결정하는 주체들이 시장 참여자 대부분이 인정할 수 있는 전문성을 갖춰야 하고, 둘째는 주주권 행사 여부에 대해 절대적인 자율권이 보장돼야 한다. 그렇잖으면 피할 수 없는 본질적 문제가 발생한다. 주주권 행사 이후에 만약 해당 기업의 재무적 성과가 매우 악화하거나, 투자 자산에 대한 막대한 손실이 발생한다면 책임질 수 있는 명확한 주체가 없다.
정부가 내수 소비를 활성화시키고 기업들이 신바람 나게 투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는 과감한 규제 철폐와 점검을 일관성 있게 추진해야 한다. 이미 국민의 예상 평균 수명이 80세를 넘어선 상황에서, 노후 생활에 대한 마지막 보루가 돼야 할 국민연금을 우리 국민은 얼마나 믿고 의지할 수 있을지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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