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호크기 설경 산수화 100점
거친 듯 섬세한 붓맛 그대로
소담한 겨울 산하 풍취 아련
조선 후기의 회화미도 물씬
초상화·풍경화 넘나드는‘대가’
“詩처럼 아름다운 설경 화폭에”
겨울 가뭄이 길어지고 있다. 눈 구경 기억도 가물가물하다. 온 세상이 흰 눈으로 뒤덮인 설경에 목마른 이들이라면 이원희 화백의 작업실에서 갈증을 단숨에 해결할 수 있을 법하다.
요즘 이 화백의 삼송리(경기 고양시 덕양구 통일로) 작업실 벽면에는 온통 눈 그림 천지다. 6호 크기의 작은 설경 산수화들이 빼곡히 붙어 있다. 흰 눈에 덮인 인적 드문 마을과 묵묵히 흰 눈을 뒤집어쓴 채 제자리를 지키는 겨울산의 바위, 설화를 가득 피워내고 있는 소나무 두세 그루, 그리고 눈밭 한가운데 점점이 홍시 빛 물감을 흩뿌려 만든 듯한 까치밥….
서울 종로구 인사동 노화랑에서 2월 13일 개막해 23일까지 계속되는 ‘이원희 겨울풍경’ 전시를 앞두고 마무리 작업 중인 이 화백의 작품들이다. 전시에는 이 화백의 6호(40.9×27.3㎝) 크기 눈그림 100점이 전시된다. 작품값은 한 점에 모두 300만 원으로 동일하게 책정돼 있다. 미술 애호가들에게는 ‘인물 초상화’와 ‘풍경화’로 대가의 반열에 들기 시작한 이 화백의 작품을 소장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초상화와 풍경화는 미술사에서 다른 장르로 통한다. 따라서 한 작가가 초상화와 풍경화를 동시에 잘 그리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이원희 화백은 두 장르를 넘나들면서도 화단에서 각 장르의 대표작가로 통한다.
노화랑의 노승진 대표는 “지난해 겨울 찬바람이 불기 시작할 무렵에 이 교수의 ‘삼송리 작업실’에 들렀다가 겨울풍경이 눈에 홀연히 들어왔다”며 “우리들 번잡한 마음을 단번에 정화시키는 눈 그림의 그 감흥을 참지 못하고 전시를 제안했다”고 말했다.
‘단색화’ 등 추상화 일색에 난해한 ‘현대 개념미술’이 대세인 우리 화단에서 이 화백은 정통 구상 회화의 자존심을 지켜 왔다. 이 화백이 대구 계명대 교수로 재직 시절 매년 여름 정통 유화기법을 익히기 위해 러시아 ‘(일리야)레핀 아카데미’에 다녔다는 이야기는 너무도 유명하다. 지난 2017년에는 정년을 5년 앞두고 20년간 몸담았던 교직도 떠났다. 작업에만 전념하기 위해서다. 거친 듯하면서도 섬세한 이 화백 특유의 ‘붓 맛’도 그렇게 탄생했다.
이번에 노화랑에 전시되는 설경 그림 100점에도 그 같은 붓 맛이 살아있다. 유화의 기름기와 끈끈한 점성에도 불구하고 화폭에는 적막감 속에 청량감이 넘친다. 그림 앞에 서면 소복소복 눈 쌓이는 소리와 흰 눈에 덮여 설화를 피워낸 나무들의 속삭임이 들려오고, 눈밭에 살아남은 붉은 까치밥은 따서 먹으면 단물이 주르르 흐를 것만 같다.
이 화백은 “나이가 드니 ‘소설’처럼 맑고 쾌청한 날보다는 흐리면서 비와 눈을 닮은 ‘시’를 더 좋아하게 됐다”며 “눈이 내린 설경 중에서도 ‘시’처럼 아름답고 서정적인 풍경을 찾아 이를 화폭에 옮겼다”고 말했다. 이 화백은 조선 후기의 겸재 정선처럼 ‘스케치 여행’을 다니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번에 전시되는 작품도 모두 산촌마을 풍경이 살아있는 경북 안동 일대와 강원도의 설악산, 정선 일대를 직접 탐방하며 스케치해 완성한 작품들이다.
이태호(명지대 미술사학과 초빙교수) 서울산수연구소장은 100점에 이르는 이 화백의 눈 그림에 대해 “유화로 그린 설경산수답다. 소담한 겨울 산하의 풍취가 아련하고, 조선후기 진경산수화의 회화미가 자연스럽게 묻어나 맛깔스럽기도 하다”고 평가했다.
이경택 기자 ktlee@munhwa.com
주요뉴스
이슈NOW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