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범섭 중령 ‘호국인물’ 선정
국가보훈처와 광복회, 독립기념관은 31일 3·1 운동의 도화선이 된 일본 도쿄(東京) 2·8 독립선언에 참여한 김마리아 선생을 2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 최고 무공훈장인 태극무공훈장을 받은 김한준 육군 대위와 최범섭 육군 중령은 각각 2월의 6·25 전쟁영웅과 호국인물에 선정됐다.
김마리아 선생은 도쿄 유학 시절 2·8 독립선언에 참여했으며, 선언문 10여 장을 미농지에 복사해 옷 속에 감추고는 현해탄을 건너 부산에 도착한 뒤 교육계·기독교계·천도교계의 지도자들에게 재일동포들의 독립운동에 대해 보고하고 국내에서의 거족적인 독립운동을 촉구했다. 3·1 운동이 일어난 날에도 선생은 여성들에게 독립운동 참여를 촉구했고, 그 배후 지도자로 지목돼 학생들과 함께 체포됐다. 국내에서 대한민국 애국부인회 회장, 중국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 임시의정원 황해도 대의원으로 활약했으며, 미국에서 여성 독립운동 단체인 근화회를 조직했다. 1932년 7월 귀국해 종교 모임과 강론을 통해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등 지속적으로 항일투쟁을 전개하다가 고문 후유증이 재발해 1944년 3월 13일 순국했다.
2월의 6·25 전쟁영웅에 선정된 김한준 대위는 7사단 8연대 소속으로 평양탈환작전에 참여했고, 휴전협정이 막바지에 이른 1953년 7월 13일 중공군의 ‘7·13 공세’에 맞서 중대원들을 진두지휘하며 425고지를 사수했다.
김 대위는 사단의 주보급로를 확보하고 전력공급원인 화천댐을 사수한 공로로 1953년 태극무공훈장을 받았고, 2012년 83세로 별세했다. ‘2월의 호국인물’에 선정된 최범섭 중령은 1966년 주월사령부 건설지원단(비둘기부대) 소속으로 월남군 4군단 태권도 지구대장 및 교관을 맡았다. 1968년 2월 1일 월맹군과 베트콩의 ‘뗏(Tet· 구정) 공세’ 당시 근무지인 껀터(Can Tho)시에서 40여 명의 한국 민간인 기술자를 대피시키던 중 월맹군의 기습으로 다리 관통상을 입었으나 권총으로 월맹군 2명을 사살한 뒤 장렬히 전사했다.
정충신 기자 csjung@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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