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 도로봉 / 사이토 린 지음, 보탄 야스요시 그림 / 고향옥 옮김 / 양철북

도둑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아동문학 작품은 드물다. 남의 물건을 훔치는 일은 불법이지만 이야기가 공감을 얻으려면 도둑질하는 주인공의 심정을 독자가 이해해야 한다. 특히 어린이 독자를 상대로 도둑의 마음을 옹호하는 이야기를 쓰는 일에는 부담이 따른다. 주인공이 도둑질을 하게 된 사연이 등장하기 마련이고 대부분은 지독한 가난과 질병을 이유로 들지만 흔한 전개가 돼버린다. 어떻게 쓰면 재미있고 새로운 도둑 이야기가 될까? ‘도둑 도로봉’의 작가 사이토 린은 그 어려운 일을 해냈다.

이 작품의 주인공 도로봉은 네 살 때부터 어림잡아 천 건이 넘는 도둑질을 했고 한 번도 잡힌 적이 없다. 형사는 다른 사건을 조사하던 중에 우연히 도로봉을 만났는데 그는 자수를 하려던 것처럼 순순히 형사에게 두 손을 내밀었고 스스로 도둑이라고 밝혔다. 의문의 절도 용의자 도로봉의 행적을 캐내기 위해서 베테랑 형사와 기록관 아사미의 취조가 시작된다. 도로봉은 자신이 왜 지금까지 도둑으로 살아왔는지를 숨김없이 털어놓는다. 그 이야기는 도무지 믿기 어려운 신기한 현상과 관련이 있다. 어려서부터 도로봉에게는 물건의 목소리가 들렸는데 그는 그 물건을 구출하러 남의 집에 들어갔을 뿐이라는 것이다. 형사와 아사미 기록관은 장난 같은 이 말의 증거를 찾기 위해서 곳곳을 수사하고 점점 도로봉의 말을 신뢰하게 된다.

도로봉이 훔친 것은 무엇이었을까? 도둑들이 잡히면 내놓는 익숙한 장물 목록과 별로 다르지 않다. 주스를 만드는 기계도 있고 다이아몬드 반지도 있다. 이 물건들에는 숨겨진 각자의 사연이 있으며 물건을 도둑맞은 주인들이 도둑맞은 줄 모르거나 신고를 하지 않는다는 공통점이 있다. 도로봉과 형사와 아사미 기록관은 그 물건의 주인들이 지닌 비밀스러운 아픔을 발견하면서 한 팀과 같은 우정을 나눈다.

“모두가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는 책 속의 문장은 흔적을 남기지 않는 투명한 도둑 도로봉을 왜 처벌하기 어려운지 설명하는 열쇠다. 어쩌면 도로봉은 누군가가 자신을 훔쳐내주기를 기다렸던 외로운 사람일 수도 있다. 수채화 같은 장면들 사이사이에 다시 읽게 만드는 잔잔한 문장이 담겨 있다. 일본 아동문학이 구축해온 아름다움을 잘 계승하는 작품이다. 이 책은 사이토 린의 첫 동화이며 이 책으로 그는 ‘일본아동문학자협회 신인상’과 ‘소학관아동출판문화상’을 받았다. 276쪽, 1만4000원.

김지은 어린이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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