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처럼 창조하고, 왕처럼 명령하고, 노예처럼 작업하라”. 루마니아 출신으로 ‘추상조각의 선구자’ ‘현대 조각의 아버지’ 등으로 일컬어지는 콘스탄틴 브란쿠시(1876∼1957)의 말이다. 다양한 장르의 예술가들에게 창작 영감(靈感)을 불러일으킨 연작 ‘뮤즈(Muse)’ ‘입맞춤’을 비롯해, ‘20세기 조각의 정점(頂點)’이라고도 하는 ‘무한의 기둥’ 등을 남긴 그의 작품 세계를 두고, 평론가들은 “시대를 앞서간 지고지순한 정신성”이라고도 극찬한다. 그런 브란쿠시 작품에 이끌린 끝에 한국 추상조각의 거장이 된 인물이 엄태정(81)이다.
한국 추상조각 제1세대로, 1981∼2004년 서울대 미대 조소과 교수를 지낸 그는 1958년 조소과 입학 직후부터 브란쿠시에게 매료됐다. 지금도 그는 “브란쿠시가 내 작업의 시작점이자 지향점”이라고 한다. 작품 대상의 겉으로 화려한 수식이 제거된, 물성(物性) 고유의 본질과 근원을 응축해 표현하는 그의 조각관(觀)은 이런 말로 압축된다. “손재간만 부리는 조각은 예술이 아니다. 조각하는 사람은 조각을 하지 않아야 제대로 조각한다.” 1967년 대한민국미술전람회에서 ‘절규’로 국무총리상을 수상하면서 주목받기 시작한 그는 당시부터 금속조각에 오래 매달려온 배경에 대해선 이렇게 밝힌 적이 있다. “나는 쇠의 물성에 경외감을 갖고 있다. 집안이 쇠를 다루는 일을 했고, 나는 어릴 때부터 철사를 갖고 놀았다. 내가 쇠를 선택했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건방진 생각이었다. 돌아보면, 쇠가 나를 불렀다. 쇠는 언제나 내게 극복해야 할 대상 아닌 존경의 대상이었다.”
‘천·지·인’ ‘청동·기(器)·시대’ ‘두 개의 날개와 낯선 자’ ‘고요한 벽체와 나’ ‘무한주(柱)-만다라’ ‘하늘도 둥글고, 땅도 둥글고, 사람도 둥글고’ ‘틈’ 등 그의 대표작과 최근작 50여 점 전시회가 아라리오갤러리 서울 삼청관과 충남 천안관에서 지난 1월 22일 개막했다. 평면작 중심인 삼청관에서는 오는 24일까지, 조각 위주 천안관에선 5월 12일까지 이어진다. “조각은 구체적 물질로 출발하므로, 어떤 초월적 세계에 이르는 일이 아니다. 내게 조각은 고통스럽고 난해한 일도, 심오한 진리 추구도 아니다. 자연과 같이 존재하며 그저 역사와 같이, 사물과 시간의 관계 속 현상이다.” 이렇게 말하는 그의 명작들이 누구에게나 눈길을 오래 멈추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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