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 회장이 2011년 전경련 회장직에 취임할 당시와는 완전히 달라진 상황이다. 전경련은 총회를 열기 한두 달 전에는 기존 회장이 주요 회원사·원로 등과 상의해 차기 회장 내정자를 정하면 언론에 미리 발표해 왔다. 하지만 지금은 미르·K스포츠재단 모금 주도로 현 정부에 ‘적폐 집단’으로 찍힌 데 이어 아예 ‘패싱(배제)’까지 당하면서 누구도 선뜻 회장직을 맡으려 하지 않는다는 소문마저 나온다. 허 회장은 2년 전에도 더 이상 연임을 하지 않으려고 했으나 맡을 사람이 없어 결국 연임했다.
이 같은 전경련의 달라진 처지에 대해 정부와 기업 간 소통 현주소를 상징적으로 시사하는 것이라고 재계는 보고 있다. “솔직히 기업들은 말문을 닫은 거나 다름없다. 전경련 사례를 보면서 다들 현 정부에 기분 나쁜 얘기를 하면 안 되겠다고들 한다”는 게 재계의 속마음이다. 한번 찍히면 헤어나올 길이 없는 현 정부의 대화 방식에 재계는 ‘입’을 닫을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현 정부가 새해 들어 부쩍 기업인들과 만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나 좀처럼 진정성과 일관성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재계는 현 정부의 소통 행보에 대해 말만 있고 행동은 없는 ‘나토(NATO·No Action Talking Only)’로 인식한다.
실적을 통해 성과를 인정받는 기업인은 말보다 행동을 보고 판단한다. 정치권처럼 ‘립서비스’가 쉽게 통하지는 않는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월 15일 주요 그룹 총수 등 기업인들과 만나 소통을 이어갔다. 하지만 법무부는 그즈음 보도자료까지 내 집중투표제 의무화·감사위원 분리선출·다중대표소송제 도입 등 상법 개정을 목표로 모든 노력을 다하겠다고 했다. 경영권 방어 수단이 없다시피 한 국내에 전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이들 제도를 도입하면 해외 투기 펀드가 경영권을 위협할 것이라는 기업들의 아우성에 대해 어떤 ‘응답’도 하지 않았다. 경제는 위기인데 말만 앞세우는 현 정부의 소통 행보를 기업인들이 ‘나토’로 받아들이는 많은 이유 중 하나다.
이관범 경제산업부 기자 frog72@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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