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6년에 한국어 배우기 시작 윤동주 詩 번역한 대표 지한파 조선민요·백자·불상 등에 매료 詩 곳곳에 한글 단어 나오기도
네 얼굴은 조선사람 같아 선조는 조선인이겠지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눈을 감으면 본 적도 없는 조선의 맑고 깨끗한 가을 하늘 그 청명한 푸르름이 펼쳐진다 아마도 그렇겠죠 나는 그렇게 대답한다
- 시 ‘얼굴’의 일부 -
한국을 사랑했던 일본 여성 시인 이바라기 노리코(茨木のり子·1926∼2006·사진)의 대표 시를 모은 시선집 ‘처음 가는 마을’(봄날의책)이 출간됐다. 그의 9권의 시집과 3권의 시선집, 미발표작 등이 실린 방대한 전집에서 추린 52편의 시편이다.
이바라기 노리코는 일제강점기이던 1926년에 태어나 젊은 시절 전쟁의 아픔과 슬픔을 겪은 시인이다. 간결하지만 뚜렷한 주제로 전후 일본의 무력과 상실감을 담아냈으며 폭넓은 사회의식과 건전한 비평 정신을 보여준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또한 김소운이 편역한 ‘조선민요선’을 읽고 조선 민요의 소박함과 기지에 이끌린 후 조선의 백자, 불상, 민화, 한글 등 한국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며 최고의 ‘지한파(知韓派)’ 시인으로 활동했다. 특히 윤동주의 시를 번역해 일본 사회에 널리 알렸다.
이번 시선집에도 한국과 한글에 대한 시인의 각별한 사랑이 곳곳에 배어 있다.
“일찍이 일본어가 밀어내려 했던 이웃나라 말/ 한글/ 어떤 억압에도 사라지지 않았던 한글/ 용서하십시오/ 땀 뻘뻘 흘리며 이번에는 제가 배울 차례입니다”(‘이웃나라 언어의 숲’ 일부)
한글을 배운 시인답게 그의 시 속에는 한글 단어가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용서하십시오”는 한글로 된 시어다.
이바라기 노리코는 남편이 세상을 뜬 이듬해인 1976년부터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해 윤동주와 신경림의 작품을 읽으며 한국현대시 번역에 매달렸다. 1990년 ‘한국현대시선’을 펴냈으며 이 책으로 요미우리문학상(번역부문)을 받았다. 2010년엔 그의 칼럼을 모은 ‘한글로의 여행’이라는 책이 국내에 출간되기도 했다.
전쟁과 폐허의 경험을 바탕으로 자유와 희망을 꿈꿨던 시인의 고뇌도 엿볼 수 있다.
“내가 가장 예뻤을 때/ 곁에 있던 이들이 숱하게 죽었다/ 공장에서 바다에서 이름 모를 섬에서/ 나는 멋 부릴 기회를 잃어버렸다∼그래서 다짐했다 되도록 오래 살기로/ 나이 들어 아름다운 그림을 그린/ 프랑스 루오 할아버지처럼/ 그렇게”(‘내가 가장 예뻤을 때’ 일부)
“처음 가는 마을로 들어설 때에/ 나는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떠돌이처럼 걷는다∼마을 하늘엔/ 어여쁜 빛깔 아련한 풍선이 뜬다∼그것은/ 그 마을에서 나고 자랐지만/ 멀리서 죽을 수밖에 없었던 이들의/ 영혼이다∼”(‘처음 가는 마을’ 일부)
어려서 전쟁을 겪으며 ‘가장 예뻤을 때’를 잃어버렸지만, 상실감이나 부끄러움에 그치지 않고 희망을 향해 용기 있게 한 발 나아가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번역을 맡은 정수윤 씨는 “지난 세기, 멀고도 가까운 이웃나라 섬에서 자기 나름의 사랑과 정의를 위해 아름다운 투쟁의 시간을 살다간 시인, 무엇이든 솔직하게 받아들이고 최선을 다해 수용해 자기 언어로 풀어내고자 한 시인의 용기를 모두와 함께 나누고 싶다”고 적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