⑤ 김각한 각자장
경판 글씨들 일정하게 파는 작업
용도 맞춰 나무 고르기부터 시작
독립기념관·경복궁·광화문 작업
불탄 숭례문 현판복원 가장 보람
10代후반 목공소서 소목일 배워
20대때 당시 각자장 만나며 인연
좋아서 시작한 일 싫증난 적 없어
이름에도 ‘각’자… 팔자인 것 같아
각자(刻字)란 목판에 글씨를 새기는 것을 말한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판인 무구정광대다라니경, 해인사 팔만대장경, 훈민정음 등 고대와 근대 인쇄문화 역시 각자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만큼 각자의 유래는 깊다. 경국대전에 보면 ‘각자’라는 표현이 나오며 수원화성을 지을 때 다산이 쓴 책에도 ‘각자’라는 단어가 등장한다. 각자법은 크게 반각(返刻)과 정각(正刻)으로 나뉜다. 인쇄가 목적인 목판본과 판화나 전각(篆刻)같이 원본을 반대로 뒤집어 새긴 것을 반각이라고 한다. 이에 비해 정각은 고궁이나 사찰의 현판·주련처럼 글씨가 바로 보이도록 새긴 것이다.
김각한(62) 장인은 국가무형문화재 제106호 ‘각자장’ 보유자인 철재(鐵齋) 오옥진(1996년 지정)에 이어 2013년 제2대 각자장 보유자로 인정받았다.
“남들이 이름에 ‘각’자가 있어서 운명적으로 각자를 하게 된 게 아니냐고 많이들 묻지요. 지금의 저를 보면 아마도 제 팔자인 것 같습니다. 어려서부터 무언가 만드는 걸 좋아했습니다. 각자는 경판 전체 글씨의 흐름을 곧고 일정하게 파야 하는 만큼 어려운 작업이죠. 그럼에도 무작정 좋아서 시작한 일이기 때문에 30년 넘게 이 일을 하면서 싫증이 난 적은 단 한 번도 없어요.”
나무 만진 지가 벌써 40여 년이 흘렀다. 서울 서초구 방배동에 있는 지하 작업실에서 만난 김 각자장은 각자와 자신과의 인연을 그렇게 설명했다. 경북 김천 출신인 장인은 10대 후반 동네 형의 목공소에서 소목일을 배우며 나무와 인연을 맺었다. 특히 군 제대 후 당시 각자장 장인이었던 철재 오옥진 선생을 만나면서 김 씨와 각자와의 질긴 인연이 시작됐다.
각자는 작업 용도에 맞는 적합한 목재를 준비하는 ‘치목’에서부터 시작된다. 경판이나 직지는 산벚나무, 돌배나무 같은 단단하고 비중이 높은 재료가 좋고 소나무, 은행나무 등 목질이 무른 재료는 벽걸이용 작품에 알맞다. 그는 각자를 하기에 좋은 나무를 꼽으라는 말에 서슴없이 우리 나무만 한 것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느티나무가 가장 좋지만 좀을 먹지 않아 오래 보관할 수 있는 은행나무도 좋은 재료라고 설명했다. 불상을 만드는 데 은행나무가 많이 쓰이는 이유도 이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후 ‘배자’과정을 거쳐야 한다. 나무 형태가 변하는 것을 막기 위해 바닷물에 담가 건조과정을 거쳐 알맞은 크기로 자르고 표면을 고른 다음 글자 간 사이를 배치하는 것을 ‘배자’라고 한다. 그리고 비로소 글자를 새기는 ‘각자’를 할 수 있다. 대부분 각자는 유명 서예가의 글씨를 바탕으로 만들어진다. 김 각자장은 각자 때문에 서예도 익혔다. 그리고 자신이 직접 쓴 글을 조각할 때도 많다.
김 각자장의 작품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중곡동 기원정사다. 보통 불상 뒤에는 탱화라는 그림이 그려지지만 기원정사에는 후불각자가 탱화 대신 자리잡고 있다. 1987년 제작된 후불각자는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만들어진 것이어서 화제가 됐었다. 작품 규모도 만만찮다. 370㎝×270㎝에 달한다. 그는 “후불각자가 잘 있는지 궁금해 이따금 기원정사를 찾는다”며 “3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한 모습을 보면 부처님이 돌봐주시는 것 같다”는 얘기도 했다.
그 외에도 김 각자장은 현판 작업을 수없이 많이 했다. 1986년 독립기념관 현판을 시작으로 고성 건봉사의 금강경 후불을 비롯해 경복궁의 태원전·건청궁·함화당, 수원 화성행궁, 부여 백제재현단지, 숭례문, 광화문 등의 현판을 스승과 함께 새로 만들거나 복원했다. 2014년 스승이 돌아가신 후에는 독일 베를린 포츠담 광장의 ‘통일정’과 동계올림픽 종각의 현판 그리고 청주고인쇄박물관의 ‘직지’ 목판본도 복원했다.
“지난 2008년 선생님(철재 오옥진)과 함께 화마에 불탄 숭례문 현판을 복원했던 작업은 가장 보람을 느낀 일인 동시에 가장 가슴 아픈 순간이었습니다. 우리 민족의 정신이 오롯이 담긴 숭례문 현판을 되살리기 위해 두어 달간 두문불출한 끝에 지금의 현판이 탄생했습니다.”
방배동 지하 작업실의 정식 명칭은 ‘고원 김각한 각자연구원’이다. 그는 이곳에서 여러 단체로 출강하며 전통 각자의 맥이 끊어지지 않게 하려고 동분서주하며 살고 있다.
“각자 작업만큼 흥미로우면서 성취감을 주는 것도 드물어요. 제가 이 작업에 빠져든 것도 어떤 비전이 있어서가 결코 아니었습니다. 우리 각자의 맥을 이어가기 위해서라도 젊은 이수자분이 많았으면 좋겠는데 정부 지원이나 사회의 관심도 제 바람에 못 미치고 있습니다.”
글·사진 = 이경택 기자 ktlee@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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