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회평 논설위원

1960년 결성된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권세는 한때 무소불위였다. 1973년 사우디아라비아가 주도한 원유 금수조치는 국제 유가를 단기간에 4배 이상 올려놓았다. 중동 석유에 의존하던 미국 등 세계 각국은 ‘오일쇼크’에 빠졌고, 한국경제도 휘청거렸다. OPEC은 툭 하면 ‘감산’ 언급으로 지구촌 경제는 물론, 정치까지도 쥐락펴락했다. 당시 OPEC을 이끌던 아메드 자키 야마니 사우디 석유장관이 회원국 대표들에게 이런 말을 했다. “돌이 부족해 석기시대가 끝난 게 아니다.” 유가를 너무 급속히 올리면 소비국들이 풍력·태양광 등 대체 연료 개발에 나설 수 있다는 뜻이다.

야마니의 우려는 현실이 됐다. 석유채굴의 혁신을 부른 것이다. 셰일 공법은 이미 존재했지만, 생산비용이 너무 비쌌다. 그러나 유가가 배럴당 120달러를 웃돌자 버락 오바마 행정부는 셰일에 눈을 돌렸고, 붐을 일으켰다. 위협을 느낀 OPEC은 2014년 지금까지와는 다른 ‘저가 공격’에 나섰다. 배럴당 20달러대까지 끌어내리는 치킨게임에도 별 성과는 없었다. 셰일 업체 상당수는 유가가 손익분기점 아래로 떨어져도 출혈을 감수하며 살아남았다. 원유를 팔아 재정을 충당하는 OPEC 산유국들도 더 이상 저유가를 감당하기 어려웠다.

카타르가 1월 탈퇴하면서 OPEC 회원국은 14개국으로 줄었다. 미국에선 OPEC의 담합을 반독점법 위반으로 처벌할 수 있는 ‘노펙(NOPEC)’ 법안이 지난주 하원 법사위를 통과하면서 입법이 유력해졌다. 셰일 석유를 등에 업은 미국으로선 더 이상 중동 산유국 눈치를 볼 필요가 없어졌다. 2007년에도 입법 전례가 있으나 당시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했다. 하지만 지금은 “국제유가가 더 떨어져야 한다”며 반(反)OPEC 감정을 감추지 않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버티고 있다.

세 불리를 느낀 OPEC의 선택은 새로운 카르텔이다. 이미 2016년부터 러시아 등 비OPEC 산유국 10개국과 감산 보조를 맞춰왔는데, 아예 통합 산유국 기구를 출범할지 여부를 18일 결정한다. 신(新)OPEC으로 세계 최대 산유국이 된 미국과 맞서려 하지만, 셰일은 기술개발로 손익분기점을 대폭 낮추며 더 강해졌다. 이들의 감산 담합으로 유가가 오르면 셰일 생산을 더 부추길 것이다. OPEC 권력의 몰락을 재촉한 건 기술혁신과 시장경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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