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진 안양 신성중학교 교사

10년전 두번의 癌진단 충격
치료과정서 상대의 말에 상처

청소년 전문 상담교사로서
‘사랑의 언어’ 중요성 깨달아

‘좋은 글귀 발표’ 수업 통해
인격수양·잠재력 개발 함께

“대화없는 아이, 꿈 잃어버려
호기심·성취욕 되살려줘야”


‘인정하는 말, 함께하는 시간, 선물, 봉사, 스킨십.’

상담전문인 정유진(50) 경기 안양시 만안구 소곡로 신성중학교 교사에게 10대를 이해하는 방법이 뭐냐고 물었더니 돌아온 답이다. 세계적인 상담가인 게리 채프먼이 40년간 결혼상담을 한 결과로 내린 ‘5가지 사랑의 언어’다. 정 교사는 “5가지 사랑의 언어는 49개 언어로 번역돼 있는데 사실 이에 관심을 두게 된 것은 사람들로 인한 상처 때문”이라고 털어놓았다.교사를 천직으로 알고 지금은 청소년 위기, 진로 전문 상담교사로 열정을 불태우고 있는 정 교사는 지난 2009년 인생의 항로에서 뜻하지 않은 암초를 만났다. 무려 한 해에 두 번씩이나 암에 걸린 것. 우선 그해 7월에 진단받은 갑상샘암. 주위 사람들이 “그건 암도 아니다. 순한 암이니 괜찮다”고 위로해도 마음이 가라앉지 않았다.충격이 컸다.


말하는 이의 기준에서 건네는 말이 상대방에게는 상처가 될 수 있음을 절감했다고. 설상가상으로 3개월 후 위암 진단을 받았다.
“치료를 받으면서 스스로 ‘평생 아프겠어?’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도 있듯 고비를 넘길 수 있을 거야’라고 토닥였습니다. 어렸을 때 자전거 통학을 했던 경험도 떠올리면서요. 상대방을 위로하거나 인정하는 말, 지지하는 말, 사랑을 전하는 말이나 방법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하나란 고민도 했습니다. 그러던 차에 만난 게 5가지 사랑의 언어였죠. 학교에서 학생, 교사들에게 제대로 학습을 하면 학교가 행복해지고 따뜻해질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학교폭력예방프로그램으로 확산하면 좋겠다는 포부도 품게 됐죠. 올해는 폴앤마크,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을 통해 구체적으로 실행에 옮길 계획입니다.”

한 해 두 번 암 진단을 받으면 대부분 사람은 절망하기 십상이지만 정 교사는 이처럼 좌절 속에서도 타인, 교육을 먼저 생각하는 희망의 다짐을 수없이 되뇌며 완치했다. 그는 방학 중인데도, 문화일보와의 인터뷰를 하던 날인 지난 12, 13일에도 분주했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주최로 서울 영등포구에서 열린 ‘학교폭력예방프로그램’ 행사에서 공감과 의사소통을 주제로 발표했다. 앞서 지난해 3월에는 6·13 전국지방선거 공약 토론회를 진행하면서 초록우산어린이재단과 인연을 맺었다.

2남 8녀의 여덟째로 태어난 정 교사는 초등과 중등에서 4명의 교육자를 배출한 집안의 가풍(家風)에, “여성도 평생직업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 모친의 성원에 힘입어 어렸을 때부터 자연스럽게 교육자의 꿈을 키웠다. 1990년 대전 서일여고에서 처음 국어교사로 교편을 잡기 시작했고 10여 년을 근속한 후 ‘전환점’에 서게 됐다. ‘어떻게 하면 청소년을 더욱 더 잘 이해할 수 있을까?’ 고민했고 결과물이 인성에 대한 상담영역으로 새로운 진로를 설정했다. 이후 청소년인성트레이너 훈련, 전문상담교사대학원 과정 이수 등을 통해 꾸준히 전문성을 축적했고 능력을 인정받으면서 2013년 전문상담교사로 전직했다.

“사실 제 고민의 기저는 교사와 학생이 더욱 행복한 학교가 무엇일까에 닿아 있어요. 계속 고민하고 이를 해결할 프로그램을 개발하기 위해 많은 전문과정을 이수했습니다. 또 이를 교사들에게 나누어 같이 해법을 모색하도록 유도했죠.”

이를 보여주는 독창적 사례 중의 하나가 서일여고에서 선보인 ‘콩나물’ 프로그램이다. 아이들의 의식을 성장시킬 문학수업 프로그램으로, 수업 전에 아이들이 주도적으로 좋은 글귀를 찾아 하루 1편씩 선택하게 된 이유를 공유하고 노트에 기록하도록 했다. 참가한 여고생들이 집중력을 보였고 자신의 이름에 대한 명예 때문인지 프로그램을 잘 따라 했다. 나중에는 “콩나물은 무엇이에요”라고 ‘정의’를 물었더니 “한 권의 책을 읽는 것 같다”는 답변이 돌아왔고 보람을 느꼈다. 이때의 성과를 엮어 올해 상반기에는 ‘흔들리는 그대를 위한 청춘들의 응원가’란 책을 펴낼 계획이다.

신성중에서는 ‘위클래스’란 카페처럼 잘 꾸민 공간에서 상담을 통해 학생 개개인의 잠재력을 개발하고 인격적 발달을 도모하는 업무를 수행 중이다. 이 역시 학교생활의 적응력을 높여 즐겁고 행복한 학교를 만드는 게 목적이다.

“우리 학교의 학생 상담 시스템은 ‘전인적’인 데 맞춰져 있습니다. 1단계로 상담 사안 접수, 2단계는 학생 프로 파일을 기반으로 한 사안에 대한 종합분석, 3단계는 담임·학부모 등과 학생지원에 대한 구체적 계획 수립 및 역할 분담, 4단계는 통합관리 평가를 통해 상담 기간과 방법에 대한 조정, 관찰, 정기적 상담, 문제 해결 방식으로 접근합니다.”

정 교사는 학생들이 안고 있는 고민과 문제 해결을 위한 중요한 ‘파트너’인 학부모에 관한 관심도 빼놓지 않는다. 매년 ‘학부모 아카데미’를 열어 자녀와 소통하는 법, 부모로서 가치관 세우기, 진로, 독서토론 방법, 아이들의 감정을 다스려주는 방법 등을 진행한다.

“최근 10대들을 상담하다 보면 꿈을 잃어버렸다는 느낌이 강하게 와 닿습니다. 밥상머리 인성교육이 점차 사라진 데다 게임, 유흥 등에 지나치게 탐닉하다 보니 성취를 위한 노력의 중요성을 깨닫지 못하고 있어요. 유튜버, 1인 크리에이터 등을 해서 돈을 쉽게 벌고 싶어 하는 아이들도 너무 많고요. 학부모들에게 아이와의 지속적인 대화 필요성을 수시로 강조하는 배경이죠.”

아이들에게도 당연히 들려주고 싶은 말이 많을 듯싶었다. 그는 “‘호기심을 놓치지 않는 게 좋다. 나는 무얼 하는 게 좋을까, 어떻게 하면 행복할까, 어떤 일로 세상에 이바지할 수 있을까’를 생각해 달라”며 “100세 인생 중 이제 14, 15세라면 하루로 비유할 때 아직 새벽도 오지 않은 셈이다. 조금 못한다고 포기하지 않길 바란다”고 했다. 해마다 집중할 가치를 지닌 단어를 골라 이름 앞에 붙여 마치 호(號)처럼 소개한다는 정 교사는 올해의 경우 ‘호기심 정유진’이라고 붙였다고 했다. 지난해에는 ‘긍정 정유진’이었다.

이민종 기자 horizon@horizon@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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