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을러 질 수밖에 없는 그날들이 사실은 정말 심오한 활동을 하고 있는 때인 건 아닌지, 종종 되묻게 돼. 위대한 도약은 우리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보낸 시기에 발생하는 게 아닐까.”(172쪽)

라이너 마리아 릴케가 쓴 편지글이다. 1차 세계대전과 심각한 우울증으로 ‘두이노의 비가’를 완성하는 데 10년이 걸린 그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 실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나중에 유익한 결과를 만든 그런 시간의 축적이었다는 이야기를 한다. 그 시간이 위대한 도약이 될 수 있다는. 쓸모없는 것의 쓸모 있음이다. 릴케의 이야기는 미국 작가 앤드루 산텔라의 ‘미루기의 천재들’(어크로스)에 들어 있는 내용이다.

책은 미루기가 습관인 저자가 도대체 나는 왜 이럴까 고민하다 미루기의 역사를 탐구한 책이다. 릴케를 비롯해 의뢰받은 지 25년 후에야 세기의 명작 ‘암굴의 성모’를 완성한 레오나르도 다빈치, 20년간 진화론 발표를 미루며 따개비와 지렁이를 탐구한 찰스 다윈 등을 통해 미루기는 단순한 회피가 아니라 때로는 완벽함, 때로는 더 높이 뛰어오르는 창의력의 시간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미루면서 받는 불안과 스트레스가 창작의 연료가 되고, 빈둥거리면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기도 하고, 스스로 좌절함으로써 새로운 시작의 동력을 얻을 수 있다고 한다. 책에 따르면 미국인의 20%는 만성적으로 일을 미루고, 대학생의 3분의 1 이상은 심각하게 일을 미룬다고 답했다. 직장인은 하루 평균 100분을 뭉기적거린다고 한다. 위대한 천재든, 평범한 사람이든 누구나 하루 24시간을 열심히 보내지 않는다는 말이다. 시간이 금이라는 것을 모르지 않는다. 하지만 숨넘어가듯, 달려가다가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도 필요하다. 띄어쓰기를 해야 문장이 되고, 여백이 있어야 그림이 아름답듯 우리의 삶도 잠깐씩 멈춰 설 때 완성된다. 240쪽, 1만3800원.

최현미 기자 chm@munhwa.com
최현미

최현미 논설위원

문화일보 /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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