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가격의 폭등에 분노하는 사람들마저 미소를 짓는 사람들의 행태를 흉내 내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비극은 바벨탑 공화국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사진은 서울 강남의 한 고층아파트.  자료사진
부동산 가격의 폭등에 분노하는 사람들마저 미소를 짓는 사람들의 행태를 흉내 내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비극은 바벨탑 공화국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사진은 서울 강남의 한 고층아파트. 자료사진

- 바벨탑 공화국 /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대학입시·주거지·취업까지…
서열이 소통 대체한 불통사회
밀리는 순간 낙오자로 축출

부·권력 서울 ‘초집중화’ 현상
지방을 내부 식민지로 만들어

사회전반 학습된 무력감 퍼져
“공적분노에 에너지 투자해야”


‘각자도생’ ‘승자독식’ ‘서열사회’ ‘불통사회’ ‘고고익선(高高益善)’ ‘갑질민국’…. 이 책에도 등장하는, 현재의 한국 사회를 단적으로 드러내는, 이젠 너무 익숙해진 용어다. 저자 강준만 전북대 교수는 ‘욕망이 들끓는 한국 사회의 민낯’이란 부제가 달린 이번 책에서 ‘바벨탑’이란 용어를 썼다. 구약성서에 등장하는 바벨탑은 끝없이 높아만 가는 인간의 탐욕과 그 인과응보를 말해준다. 강 교수는 이 책에서 “탐욕스럽게 질주하는 ‘서열사회’의 심성과 형태, 그리고 서열이 소통을 대체한 불통사회를 가리키는 은유이자 상징”이라고 말한다.

몇 년 전 20∼35세 청년층을 상대로 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42%가 자신들이 원하는 미래에 대해 ‘붕괴, 그리고 새로운 시작’을 바랐다. 청년들 열 중 넷 이상은 “싸그리 망하고 다시 시작했으면…’ 하는 심사가 솟구치는 벼랑 끝에 서 있다는 조사 결과다. 한국 사회가 ‘누구에겐 천국이지만 누구에겐 지옥’인 것이다. 저자는 이번 책이 “우선적으로 일부 청년이 왜 ‘헬조선’을 외치는지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라고 말한다.

책은 그동안 나왔던 다른 이들의 국내외 저서와 보도된 기사 중에서 ‘바벨탑 공화국’을 말해주는 사실들을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그 사실들을 보면, 고층 아파트로 상징되는 주거지부터 대학 입시, 취업에 이르기까지 한국 사회는 모든 게 다 서열화돼 있다. 서열에서 제외되면 ‘잉여’로 축출돼 낙오자가 될 뿐이다. 여기에는 이제 이념은 없다. 잉여가 되지 않으려 발버둥치는 청년들은 노조에 대한 혐오와 적개심을 드러낸다. 집값, 정규-비정규직, 서울-지방의 서열주의에서 보수 정부와 진보 정부의 차이도 없다. 진보는 입으로는 낙오자에 대한 배려를 강조하지만 그들 자신이 이미 기득권인 데다 지지율에만 목을 매다 보니 오히려 ‘희망 고문’을 할 뿐이다. 6·25전쟁이 끝난 지 오래지만 한국인들은 여전히 ‘전쟁 같은 삶’을 살고 있다.

저자는 부와 권력이 서울로 몰리는 ‘초집중화’가 한국을 전쟁 같은 승자독식과 서열사회로 만든 기본 바탕이자 한국 사회를 집어삼킨 소용돌이라고 본다. 지방을 한국의 ‘내부 식민지’로 만드는 초집중화는 정치, 경제, 문화는 물론 교육과 소통채널까지 지방을 서울에 종속시킨다. 다원주의와 분권화가 답이겠지만, 선거에서 초집중화는 이슈조차 되지 못한다. 우선 초집중화의 내부 식민지 체제는 지역의 문제라기보다 계급의 문제다. 지방의 토호들이야 서울에도 투자해놓은 집이 있고 서울의 대학과 직장에 자식들을 보낼 수 있으니 초집중화가 문제 될 게 없다. 특히 대학은 서울 초집중화의 ‘빨대’ 역할을 했다. “우수하니까 서울에 있고, 서울에 있으니까 우수한 것”이다.

한국의 모든 선거는 서울이 지방을 빨아들이는 역할을 한다. 국회의원이나 지방자치단체장 후보들은 “나 서울에 줄 있다”는 게 공천이나 선거 결과에서도 가장 큰 무기다. 지자체도 ‘서울에 줄 있는’ 단체장을 뽑아 예산확보 전쟁에서 유리해지는 게 우선이다. 주민들도 자기 지역 출신이 중앙권력을 장악하는 게 지역의 이익에 도움이 된다고 보니 서울 초집중화 문제는 애초에 선거에서 이슈가 되지 않는다. 물론 서울 자체에서도 부분이 전체와 비슷한 구조로 똑같은 승자독식의 게임이 벌어진다.

보수 정부건 진보 정부건 모두 실패했고 행동으로 옮기지 않고 있는 마당에 법과 제도로써 해결할 수 있다는 기대는 낮아 보인다. 책에서 저자도 “오직 경쟁 일변도로 모든 문제를 해결해보려는 기존의 발상에 ‘협력’과 ‘공존’이라는 가치를 주입시켜야 한다”는 원론적인 말 이외에 눈에 띄는 대안을 말하지는 않는다. 정부와 국민 모두 ‘바벨탑 멘털리티’에 중독된 마당에 무슨 대안이 있을까. ‘바벨탑’을 가장 선명하게 드러내 주는 것은 ‘부동산 공화국’일 텐데, 국민 대개는 이에 관해 ‘사회’는 없고 오직 ‘나와 내 가족’만 생각한다.

지난해 회사 대표에게 3년간 거의 매일 폭행을 당한 직원에 대한 뉴스가 있었는데, ‘왜 대응하지 못했는가’라고 사람들이 분개했다. 피해자의 변호인은 “피해자도 매일 반복되는 폭행으로 무기력이 학습돼 자신의 힘만으로 올무에서 빠져나올 수 없었다”고 설명했는데, 어찌 보면 이 같은 ‘학습된 무력감’은 우리 사회 전반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저자는 “잠든 사람은 깨울 수 있어도 잠든 척하는 사람은 깨울 수 없다”는 다소 절망적인 말을 하기도 한다. 책의 말미에 저자는 “우리 모두 사적 평온이나 행복을 유지하고 가꾸면서 공적 분노에 작은, 아주 작은 에너지나마 투자하면 좋겠다. 남도 아닌 나의 가족의 미래를 위한 소박한 이기심으로 말이다”라고 마무리한다. 284쪽, 1만 5000원.

엄주엽 선임기자 ejyeob@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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