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우가 내린 뒤 물길이 바뀌듯이 한때는 세계를 호령했던 로마제국은 395년 동서로 갈라지게 된다. 이러한 새로운 물줄기는 왕권의 안정을 이룬 동로마제국이 치세를 이어가며 1204년까지 지속된 것과 달리 서로마제국은 많은 흥망과 전쟁을 통해 변화와 풍파를 겪게 된다.

그중에서도 로마제국의 시작이었던 이탈리아는 서로마제국이 무너지고 세워진 프랑크 왕국이 나뉘면서 여러 도시도 독자적인 정치세력을 이루며 분열된다. 다른 나라들이 하나의 정체성을 갖춘 공동체 국가들로 성장하는 동안 이탈리아는 이러한 분열로 인해 1861년 3월 17일 이탈리아왕국이 선포될 때까지 혼란을 겪게 된다.

통일된 국가가 세워졌지만 너무나도 오랜 세월 동안 이어져 온 각 도시의 독자적인 문화로 인해 이탈리아라는 하나의 정체성을 갖기에는 너무나도 이질적이었다. 특히 각 지역의 방언이 심해 언어의 통일이 쉽지 않았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눈에 보이지 않게 기여했던 인물이 바로 주세페 포르투니노 프란체스코 베르디다. 학창시절 음악 시간에 배웠던 오페라 작곡가 베르디 말이다. 그가 태어난 1813년 10월 10일 당시의 론콜레는 나폴레옹의 프랑스가 지배하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조셉 포르튀냉 프랑수아 베르디라는 이름으로 출생신고가 되었다. 이듬해에 있었던 오스트리아와 러시아군대의 침공은 하마터면 전설적인 작곡가의 등장을 막을 뻔했다. 이러한 격변기를 살아온 베르디는 주변에 휘둘리지 않고 다른 나라들처럼 통일된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는 교향곡이나 실내악, 협주곡 같은 음악과 달리 이야기의 흐름이 있어 대사로 표현해야 했던 오페라를 작곡하며 사람들의 흥미를 끌었다. 나부코나 에르나니와 같은 오페라들은 음악을 빗대 강성한 이웃나라들에 억압받는 현실과 이탈리아인들의 민중의식을 토대로 애국심을 일깨우며 큰 성공을 거둔다. 그의 음악은 공연의 성공으로만 그친 것이 아니었다. 사람들은 입으로 오페라의 아리아나 레치타티보를 흥얼거리며 따라 했고 이러한 유행은 유난스러운 자부심으로 고집을 꺾지 않았던 이탈리아인들의 입으로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언어의 통일을 이루는 데 기여했다.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던 감성적인 베르디의 음악성은 어디서 나왔을까? 이탈리아의 소설가이면서 비평가로 활동했던 쿠르치오 말라파르테는 베르디의 음악은 처음부터 끝까지 람브루스코로 가득 차 있다는 말로 그의 음악을 표현했다. 람브루스코는 이탈리아에서만 생산하는 포도품종으로 에밀리아로마냐주와 롬바르디아주 일대에서 재배된다. 베르디가 태어난 론콜레가 이 지역에 들어간다. 람브루스코는 여기서 생산되는 와인의 이름으로도 사용된다. 루치아노 파바로티를 비롯한 많은 이탈리아인이 사랑하는 술이다.

식재료의 집산지로 알려진 이 지역에서 다양한 음식과 와인을 즐겼던 베르디는 음악 역시 다양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삶의 냄새가 나는 음악을 만들었다. 젊은 시절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들을 먼저 떠나보내야 했던 슬픔을 음악으로 승화시키며 듣는 이들의 마음에 감동을 주었다.

와인을 즐겼던 베르디의 주(酒)문이 걸린 것일까? 많은 오페라에서 술과 관련된 장면이 나오지만 그가 만든 오페라 작품인 라 트라비아타의 ‘축배의 노래’는 오페라공연 이외에도 갈라 콘서트 등 전 세계의 많은 공연에서 불리며 여전히 사랑받고 있다.

술칼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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