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代물림’ 간장종지 꺼내다 박살
별일이네! 되뇌며 뒤처리하다
받은 부고 문자에 어안이 벙벙
갱년기 겪으며 만남이 뜸해져
病苦 사실조차도 몰랐다니…
사람은 자기안으로 열린 존재
담담히 떠난 당신의 길 대해,
언젠가 뒤이어갈 나의 길 대해
그때까지 잘 계세요, 오랜 벗!
입춘도 지났으니 봄눈이라 부를까요. 포슬포슬 쌀가루처럼 흩날리다 강물 속으로 흔적 없이 사라지는 봄눈이 안개처럼 자욱한 북한강변에서 이 편지를 씁니다.
지난 세밑의 분주한 겨울 아침, 당신은 강 저편으로 떠났습니다. 강 이편에 남은 우리들과 함께했던 지상의 시간들에 홀연히 작별을 고하며…. 당신의 부음을 듣고 우리들은 어안이 벙벙했지요. 더욱이 지난 한 해에 가까운 지인을 셋이나 잃은 나는 이 믿기지 않는 추가 부고가 황당스럽기까지 했습니다. 사십 년 가까이 이어져 온 모임의 멤버들인 우리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무슨 소리야? 어떻게 된 거야? 되물으며 풀숲에서 별안간 날아오른 한 마리 새의 비상에 놀란 미어캣들처럼 우왕좌왕, 어찌할 바를 몰라 했지요.
그날 아침 나는 찬장에서 그릇 하나를 꺼내다가 떨어뜨렸어요. 신혼 때부터 시어머님으로부터 물려받아 써온 해묵은 간장 종지였어요. 가운데 작은 진홍색 들꽃이 그려져 있고 가장자리에 금박 테가 둘러진, 촌스럽다면 촌스럽고 고졸하다면 고졸한 물건이었죠. 사기로 된 그것은 내 손에서 미끄러져 부엌 바닥에 떨어지는 순간 박살이 났어요. 그 조그만 것의 잔해를 치우기 위해 처음엔 손으로 하나둘 파편을 집어 들던 나는 결국 빗자루, 걸레에 이어 진공청소기까지 동원해야 했어요. 큰 파편들 몇 조각 외에 가루처럼 바숴진 파편들이 사방에 구석구석 흩어졌던 거죠. 별일이네, 별일이야! 하고 되뇌며 파편과 가루를 신문지에 털어 모으며 뒤처리를 하는데 휴대폰 진동이 울렸고 낯선 번호로부터 온 문자가 떠 있었어요. 눈으로 확인하기 전에 몸이 먼저 알고 부르르 떨렸는데, 당신의 직장 동료가 보내온 부고였습니다.
장례식장은 꽤 멀었고, 버스와 지하철과 택시를 다 타야 했지요. 한강 다리를 건너는 버스 차창 밖으로 엷은 노을이 비낀 하늘에 한 무리 물새들이 열 지어 날아가고 있었어요. 저 새들은 헤엄도 치고 땅에서 거닐기도 하고 저렇게 날기도 하는구나! 우리 인간도 요즘 세상에선 그 세 가지를 다 하지…. 그런데 저들 또한 지상에서의 인간처럼 목표점을 두고 이동하는 거겠지? 세상의 모든 목표점은 도달 이후에 우리를 어디로 데려갈까? 나는 엉뚱한 상념에 빠져 버스를 두 정거장이나 지나쳐 내렸어요.
지난해 먼저 떠난 나의 세 지인은 미망인, 이혼녀, 유부녀로 자식 또는 남편을 남겨두고 갔지요. 한데 당신은 환, 진갑을 넘기도록 ‘말끔한’ 독신 호적을 지녀온 사람이고 그 때문인지 어쩐진 몰라도 대부분의 우리보다 오래 살 것 같았는데요. 빈소 입구에 붙어있던 어느 시인의 추도시 제목처럼 그야말로 ‘감쪽같은 부고’였습니다. 우리들은 명절 전에 장례를 마칠 수 있도록 설 연휴 나흘 전에 떠난 당신의 ‘착한 끝’에 탄복하면서도 이별을 실감하기는 어려웠어요. 빈소에서도 우리들은 대체로 맨숭맨숭한 얼굴로 맥주잔을 부딪치며 동떨어진 화제들을 헐렁하게 주고받다가 일찌감치 헤어졌습니다.
실로 오랜만에 모인 멤버들인데, 더구나 그 중심 멤버였던 당신을 떠나보내는 자리인데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요. 우리들의 그 모임은 이름조차 붙여지지 않은 채 20대 중후반에 만난 여성 열 명이 삼십여 년을 오직 술집에서 두어 달에 한 번씩 모여 회포를 푸는 별난 모임이었지요. 각기 다른 직종에서 커리어를 쌓아온 일하는 여성들이 어느 주점에서 만난 인연으로 엮어져 그토록 오랜 세월 변함없이 이어져 온 데는 당신이나 나 같은 ‘주류’ 멤버가 술추렴 비용이 아깝지 않게 마셔댄 덕도 있겠지만 그저 안주발만 날리면서도 끝까지 주석을 지킨 의리 있는 ‘비주류’ 멤버들의 공도 컸어요. 처음 만났던 그 술집은 문을 닫은 지 오래고 이후로 단골 주점을 여럿 바꿔가면서 아마, 대여섯 해 전까지만 해도 꽤 정기적으로 만남을 가졌던 것 같아요. 그러던 것이 하나둘 건강상 문제가 생기고 이런저런 갱년기의 불편들을 겪으면서 만남이 뜸해지기 시작하고 지난 서너 해는 일 년에 겨우 한, 두 번에 그치게 되었지요. 그래서 서로의 일상을 잘 알 수 없었다손 치더라도 당신이 지난해 내내 목숨을 위협하는 병고 속에 신음하며 지낸 사실에 그리도 깜깜할 수 있었다니! 사람은 자기 안으로만 열린 이기적 존재라는 인성회의론에 동의할 때가 된 것 같군요.
당신과 내가 신촌 록카페에서 처음 만났을 때가 생각납니다. 뭔가 심상찮은 사회적 파장을 일으킬 것으로 우려됐던 어떤 인질테러 사건에 대해 내가 과장된 절망의 포즈를 취하며 맥주잔을 뒤집고 있을 때 당신이 내게 말했지요. “오, J씨 무서워요. 그게 그렇게까지 절망스러운 일인가요?” 너무도 나긋나긋한 목소리에 몸가짐조차 기모노를 입은 듯 지나치게 조신해 뵈는 당신이 그 말을 했을 때 나는 왜 한마디도 반박을 못 했던지요. 그때 당신의 태도는 그즈음 내가 강한 거부감을 느끼곤 했던 가식적 겸손의 표본처럼 보였는데 말이죠. 그 이유를 나는 머지않아 알게 되었어요. 당신의 공손함과 부드러움과 단정함은 결코 가식이 아니라 타고난 본성이며 수양으로 지켜간 덕성이라는 걸 만남이 거듭될수록 확인했지요. 가식은 오래가기 어려운데 당신은 우리가 만나온 긴 세월 동안 한결같이 그러했거든요. 당신과 내가 출판인과 작가로서 딱 한 번 어떤 책을 공동 기획하여 펴냈던 것 외에 오로지 술자리에서의 만남으로 이어져 온 우리 인연. 아, 그래요…. 내 마음속에서 당신은 언제나 ‘그녀’라는 3인칭으로 불리는, 미지의 정든 타인이었죠.
그래서일까요? 당신의 빈소에 가서도, 또 이후로도 나는 그다지 슬퍼지지 않았어요. 함께 기울인 수많은 술잔과 취기 속에 나눈 무수한 대화에도 불구하고 허망감조차 별로 들지 않는 게 이상해요. 하지만 집안에서 대를 물려 써오던 그 조그만 간장 종지가 깨졌을 때 파편이 그토록 산산이 흩어졌던 일이 당신의 떠남과 자꾸 오버랩되어 떠오르네요. 당신의 미소와 말씨와 몸짓은 산산이 뿌려져 편재하는 기억의 파편들로 많은 이 안에 살아있을 것 같습니다.
요즈음 거의 매일 당신을 생각한답니다. ‘이렇게 무심하게 가기도 힘들다’고 표현한 시인의 추도사처럼 그토록 담담히 떠난 당신의 길에 대해. 그리고 언젠가 뒤이어 떠나갈 나의 길에 대해…. 그때까지 잘 계세요, 오랜 벗. 여전히 알고 싶은 ‘그녀’여!
구자명 소설가
한국미니픽션작가회
창립위원장
주요뉴스
시리즈
이슈NOW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