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非종교적 예비군 훈련거부’ 첫 無罪판결 논란

“판사들 고민없이 공명심 작동”
“신념 증명방법 뭐냐” 반응 싸늘

훈련 거부 대체방법 없는 현실
“사회적 합의때까지 재판보류”


종교적인 이유가 아닌 “폭력 행위에 가담할 수 없다”는 개인의 신념으로 예비군 훈련을 거부한 20대 남성에게 무죄를 선고한 법원의 판결을 놓고 20일 논란이 확산하고 있다. 현역 병역거부의 경우 국방부가 ‘교정시설 36개월 합숙’ 안을 내놓고 국회의 심의를 기다리고 있지만, 예비군 훈련에 대해선 아무런 대책이 없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특히 군 복무를 앞뒀거나 수행한 20∼30대 남성들 사이에선 “박탈감을 느낀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법조계에서는 “양심적 병역거부의 기준을 흔든 무리한 판결”이라는 지적이 이어졌다. 앞서 수원지법 형사3단독(부장 이재은)은 지난 14일 2016년부터 3년간 14차례 예비군 훈련 소집에 불응해 병역법과 예비군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구모(28) 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지난해 6월 헌법재판소가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해 대체복무제를 규정하지 않은 병역법이 헌법에 불합치한다는 결정을 내린 이후 처음으로 나온 ‘비종교적 병역거부’ 무죄판결이다.

20∼30대의 반응은 싸늘했다. 예비군 불참 이유로 인정된 “타인의 생명을 빼앗는 전쟁을 위한 군사훈련에 참석할 수 없다는 신념”에 대해 공무원 준비생 김건호(30) 씨는 “신념을 증명하는 방법이 도대체 무엇인가”라고 반문했다. 김 씨는 “폭력성이 다분한 게임을 하느냐, 하지 않느냐와 같은 기준으로 신념을 판단한다면 누가 그 결정을 따르고 인정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직장인 김모(26) 씨는 “사회적으로 양심의 명확한 기준이 확립되지 않은 상황에서 판결을 내리면 사회 질서가 크게 흔들릴 것”이라며 “‘나는 폭력을 좋아하고 잔인한 걸 즐겨 훈련에 참여하나’라는 자괴감이 든다”고 털어놓았다.

법조계와 학계에서도 사법부가 공명심을 발동한 탓에 갈등과 혼란을 부추겼다는 쓴소리가 나왔다. 한 고위직 법관은 “대법원의 전원합의체 판결 자체가 (대체입법이 마련되기도 전에) 무책임하게 앞장서서 병역거부 기준을 모호하게 만들어놨다”면서 “대법원보다 사회적 책임감이 덜한 하급심에서는 앞으로 이런 시류영합적인 판결들이 난무해 사회 혼란을 더욱 가중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 지방법원 부장판사는 “병역거부 기준이 종교에서 교리, 신념 등의 순서로 진행되리란 점은 당연한 귀결”이라면서 “판사들이 깊은 고민 없이 공명심만 작동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김상겸 동국대 법학과 교수도 “양심에 관한 판단을 누가 어떤 기준으로 할 것인가에 대한 입법이 전혀 되지 않은 상황에서 섣부른 결정이 나왔다”며 “국회가 사회적 합의를 거쳐 관련 사안을 명확하게 정리할 때까지는 잠정적으로 재판을 보류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김영길 바른군인권사무소 대표는 “이번 판결로 예비군 체제 전체가 무너질 수 있다”며 “올해까지는 양심적 병역거부 판단에 대해 유예기간을 뒀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손우성·윤명진 기자 applepie@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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