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드러난 사실과 정황만으로도 ‘환경부 블랙리스트’의 죄질은 박근혜 정부 때의 ‘문화계 블랙리스트’ 파문보다 더 나쁘다. 정권 입맛에 맞지 않는다고 국고 지원 대상에서 배제한 정도가 아니라, 아예 특정인을 정해 놓고 표적 감사를 벌이고 온갖 압박을 가해 쫓아낸 뒤 낙하산 인사로 그 자리를 채우는 데 국가 권력이 동원됐기 때문이다. 문화계 블랙리스트에다, 김기춘 전 비서실장이 김종덕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에게 지시해 일부 문체부 공무원들에게 사직서를 제출케 했던 ‘문체부 블랙리스트’사건을 합친 것과 흡사하다. 법원은 이를 직권남용과 권리행사 방해로 판단했다. 박 전 대통령 탄핵 소추의 빌미도 됐던 부분이다.

그만큼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태는 중대하다. 더욱이 청와대가 관련 문건을 보고받은 사실이 수사 결과 확인됐다고 한다. 사실이라면 그동안 청와대의 해명이 결과적으로 거짓말이 되는 셈이다. 청와대는 관련 보도가 나올 때마다 “알지 못한다”고 해왔다. 그런데 공무원들의 진술과 증거로 개입 사실이 확인됐다는 보도가 이어지자 19일 김의겸 대변인은 “통상업무 일환으로 진행해 온 체크리스트”라고 말을 바꿨다. 조직적 은폐 의혹까지 짚인다. 청와대 민정·인사 라인은 물론 그 윗선까지 철저한 조사가 당연하다.

서울동부지검은 한 차례 소환조사를 했던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에 대해 출국금지 조치하고 곧 재소환할 예정이다. 김 전 장관은 지난달 말 “보고받은 기억이 없다”고 진술했지만, 압수수색 및 관련 공무원 진술에서 직접 관련성을 입증할 물증이 다수 나왔다고 한다. 검찰이 김 전 장관 선에서 꼬리자르기를 해선 안 된다. 한국환경공단의 경우, 후임자를 선정했지만 친정부 성향의 인사가 통과하지 못하자 전형 자체를 무효화하는 일까지 있었다. 현 검찰 수사가 제대로 진행되는지 국민은 주시하고 있다. 자칫 특검까지 가게 되면 현 수사팀 역시 수사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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