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재욱 경희대 교수·경제학

정부가 또 개인 채무자의 빚을 탕감해주겠단다. 문재인 정부 들어 두 번째다. 지난해 1월 1000만 원 이하의 원금을 10년 이상 갚지 못한 장기 소액연체자와 연대 보증인의 빚 3조2000억 원 전액을 탕감해줬다. 당시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빚 탕감이 ‘일회성’임을 분명히 했다.

그런데 지난 18일 또다시 ‘개인채무자 신용회복 지원제도 개선 방안’이란 빚 탕감 계획을 발표했다. 계획에 따르면 기초생활수급자, 70세 이상 고령자, 10년 이상 장기연체자가 최대 95%까지 원금을 감면받는다. 나머지도 3년간만 성실히 갚으면 모두 탕감된다. 취약계층이 아닌 사람도 원금의 최대 70%가 감면될 수 있으며, 회수 가능한 미상각 채무까지도 최대 30%까지 감면된다. 연체 위기에 처한 사람에게 긴급 상환유예와 장기분할상환을 해주는 ‘신속지원제도’도 신설된다.

취약계층에 대한 일부 빚 탕감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이자는 물론 원금의 거의 전부를 탕감해주고, 회수 가능한 미상각 채무까지 감면해주는 것은 지나치다. 정부의 지나치고 반복적인 빚 탕감은 금융시장을 왜곡시켜 경제를 망가뜨릴 것이다. 재산권이 침해되거나, 자율성이 훼손되고, 도덕적 해이가 만연하면 금융시장이 잘 작동하지 않는다. 정부의 이번 빚 탕감은 금융회사들의 채권을 정부가 마음대로 처분하는 것이므로 금융회사들의 재산권을 침해하고, 금융회사의 자율성을 훼손하게 된다. 그리고 채무자들에게 빚 안 갚고 버티는 게 유리하다는 도덕적 해이를 확산시키게 될 것이다. 이런 환경에서는 금융산업이 발전할 수 없고 경제 활동이 활발해질 수 없다.

게다가 정부의 빚 탕감은 장기적으로 서민들을 위한 조치가 아니다. 금융회사의 재산권이 침해되고 자율성이 훼손되며, 채무자들의 도덕적 해이가 심해지면 서민들은 돈 빌리기가 어렵게 된다. 금융회사들이 리스크 관리를 위해 대출 조건을 까다롭게 적용할 것이기 때문이다. 금융회사에서 돈을 빌리지 못하는 사람들은 사채시장을 이용할 수밖에 없어 더 나쁜 상황에 몰리게 된다. 만약, 정부의 빚 탕감으로 손해 본 금융회사에 정부가 세금으로 보전해준다면 그것은 결국 납세자의 몫이 된다. 납세자들의 불만이 폭발할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금융회사들이 채무자들의 신용평가를 꼼꼼히 하지 않는 도덕적 해이를 초래할 것이다. 금융사들의 도덕적 해이는 더 큰 문제다. 금융회사들의 부실이 늘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취약한 채무자들에게 가장 도움이 되는 길은 소득 창출을 통해 빚을 갚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문 정부가 이렇게까지 지나치게 빚 탕감에 나서게 된 배경은 무너져 내린 민생경제의 심각성에 있을 것이다. 지난해 사라진 서민층 일자리가 자그마치 19만5000개이고, 폐업한 영세 자영업자가 100만 명에 이른다. 생활이 어려워진 서민들은 보험을 깼다. 2018년 10월 말 기준 보험 해지에 따른 환급금이 전년 같은 기간에 비해 18.4% 늘었다. 빚을 얻는 사람도 많아졌고, 자연히 빚을 못 갚는 사람도 늘었다.

이런 상황을 타개할 방법은 정부의 잘못된 정책을 수정하는 것이다. 현 상황은 바로 소득주도 성장이란 기치 아래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 등을 추진한 결과다. 빚 탕감은 미봉책일 뿐이다. 하루빨리 정책 방향을 전환해 규제 완화와 감세정책으로 민간경제를 활성화시켜야 한다. 그리고 취약한 채무자들에 대해서는 부채조정제도나 파산제도를 활용해 피해를 최소화해 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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