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영길 한일의원연맹 부회장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아키히토(明仁) 일왕은 왕세자 시절이던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이나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한국 방문을 검토했으나, 양국 사정과 일본 내각의 반대로 성사되지 못했다. 1989년 즉위한 아키히토 일왕은 오는 4월 퇴임을 앞둔 현재까지 한 번도 야스쿠니(靖國) 신사를 참배한 적이 없다. 전쟁범죄를 일관되게 반성하고 전쟁을 반대하는 입장을 계속해서 표명해 일본 내에서 ‘평화 헌법’의 핵심인 제9조를 지키려는 세력의 상징으로 인식되고 있다. “나로서는 간무 천황의 생모가 백제 무령왕의 자손이라고 속일본기(續日本紀)에 기록돼 있어 한국과의 인연을 느끼고 있습니다”라면서 생애 중에 한국을 방문하고 싶다는 말도 해왔다.

역대 우리나라 대통령은 노태우-김영삼-김대중-노무현-이명박 대통령까지 일본을 방문할 때마다 아키히토 일왕을 예방해 왔다. 그때마다 일본의 식민통치에 대해 표현은 미흡하지만, ‘통석(痛惜)의 염(念)’ ‘과거의 역사에 대한 깊은 반성’ ‘한반도의 여러분께 크나큰 고통을 안겨준 시대’ 등을 표명한 바 있다. 당시의 우리나라 대통령들도 일왕의 방한(訪韓)을 요청해 왔고 일왕도 방한 의사를 밝혀왔으나, 아직 이뤄지지 않고 있다.

지금 한·일 관계는 악화일로다. 일본은 오는 4월 지방선거와 7월 참의원선거가 예정돼 있다. 아베 신조(安倍晉三) 총리는 개헌선을 확보하기 위해 모든 방법을 강구하고 있다. 한편, 우리나라는 3·1운동 100주년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는다. 일본은 한국과 가장 가까운 이웃이다. 상호 가장 많은 영향을 주고받는 나라다. 경제적으로 중국·미국·독일에 이어 제4의 교역 상대국이다. 양국 간의 감정 대립이 계속되는 것은 도움이 안 된다.

나는 학생운동 시절부터 일본의 역사 문화에 관해 관심을 가지고 일본어도 열심히 공부해 왔다. 일본 식민지 시절 2·8독립선언 관계자와 박열 등 독립운동가를 도왔던 후세 다쓰지(布施辰治) 변호사를 발굴한 정준영 씨를 도와 일본인으로서는 처음으로 대한민국 건국훈장을 받게 한 일도 있다. 초선 의원 시절 한일의원연맹 활동을 하면서 30번이 넘게 일본을 방문해 일본 의원들과도 교류했다. 특히, 고노 다로(河野太郞) 현 외무상은 고노 담화의 주역인 고노 요헤이(河野洋平) 중의원 의장의 아들로, 나와 동갑이다. 선거구를 서로 방문하는 등 개인적으로 친하게 지내 온 인사이기도 하다.

얽히고설킨 한·일 관계를 풀어내야 한다. 그 해법으로, 아키히토 일왕의 방한이 필요하다. 수백 년에 걸친 영국과 아일랜드의 갈등과 반목도 2011년도 엘리자베스 여왕이 아일랜드를 방문해 해결의 실마리로 작용한 바 있다. 1970년 서독의 빌리 브란트 총리가 폴란드 바르샤바 유대인 희생자 추모비 앞에서 무릎 꿇고 추념하는 모습을 통해 나치의 독일제국과 민주주의 독일은 서로 차원이 다른 나라임을 각인시킨 것은 지금도 전 세계인의 가슴에 감동으로 남아 있다.

우리는 민주주의 일본이 민주주의 대한민국의 친구 나라, 우방으로 남기를 원한다. 김대중-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선언에서와 같은 미래 발전 파트너가 돼야 한다. 지금이야말로 아키히토 일왕의 방한을 적극 검토할 때다. 일본 국내법 절차가 걸림돌이 된다면 4월 퇴임 이후 자연인 신분으로라도 방한을 기대한다. 독립기념관과 공주 무령왕릉도 둘러보고, 나눔의 집에 들러 위안부 할머니들의 손을 잡아주고 위로해 준다면 새로운 한·일 관계 발전의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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