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용품 ‘케모포비아’ 확산
‘씰리침대’ 라돈 나와 리콜
일부 속옷·화장품서도 검출
소비자들, 측정기 직접 구매
작년 4분기 위해정보 접수
1만2797건… 동기比 21%↑
“국민안전 위한 직무 불이행”
시민단체, 원안위 고발까지
“리콜 대상이 아닌 모델임에도 너무 불안해서 30만 원짜리 라돈 측정기를 사서 직접 확인했는데, 정부 기준치보다는 낮지만 생각보다 수치가 너무 높게 나와 침대를 버렸습니다.”
서울 은평구에 거주하는 정윤정(여·41) 씨는 지난 2016년 온라인을 통해 씰리 침대를 구매했다가 최근 1급 발암물질 라돈 검출 논란이 일면서 침대를 버렸다고 21일 이같이 토로했다. 원자력안전위원회는 지난 13일 씰리 침대 모델 중 ‘회색 메모리폼’이 사용된 제품들에서 라돈 원료물질인 모나자이트가 검출됐으며 총 6종 357개 제품이 생활주변방사선안전관리법 안전기준을 초과했다고 밝혔다.
씰리코리아컴퍼니는 여기에 안전 라돈 농도 기준(4pCi)에는 미달하지만 안전 우려가 있는 제품을 더해 총 9종 500여 개 제품에 대해 리콜을 진행하고 있다. 정 씨는 “그대로 사용하기에는 너무 불안해서 침대를 버렸는데, 리콜 대상에 포함되지 않아 환불 등의 조치를 받을 수도 없어 손해를 봤다”면서 “특히 온라인몰을 통해 구매한 이들이 피해가 큰데, 백화점 등 프리미엄 제품만 신경 쓴 것 같아 화가 난다”고 토로했다.
씰리코리아컴퍼니 측은 조속히 리콜 조치를 완료하고, 환불·교환 등에 나선다는 방침이지만 라돈 성분에 노출된 이들에 대한 보상 조치는 마련하지 않은 상태다.
정 씨처럼, 9종에 포함되지 않은 제품임에도 불안감이 커지면서 직접 라돈 측정기로 측정하는 이들이 많아지고 있다. 유명 맘카페 등 온라인상에서는 라돈 측정기로 측정하는 방법 등을 공유하는 글들이 상당수 올라와 있다. 지난해 11월에는 한국소비자원에 접수된 침대 관련 상담 건수가 1525건으로 전년 동기 대비 5배에 달하기도 했다.
침대 외에도 기능성 속옷이나 화장품에서도 라돈이 검출되는 등 다양한 생활 제품에서 인체에 유해한 화학물질이 기준치 이상 검출되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소비자들의 ‘케모포비아’(화학물질 공포 현상)가 심화되고 있다. 특히 이번 씰리 침대 사태의 경우 라돈 침대 문제를 촉발시킨 지난해 5월 대진침대 라돈 검출 이후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국가기술표준원이 조사를 벌였을 당시 드러나지 않았던 문제여서 소비자들의 정부 불신은 더 커지고 있다. 직접 유해물질 검출기기를 구매, 대여하고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검사 방법을 공유하는 상황이다. 이 과정에서 각종 확인되지 않은 정보들도 난무하면서 케모포비아는 더 확산되는 양상이다.
지난해부터 7세 아들이 여러 형태로 변형되는 장난감 슬라임을 갖고 놀았다는 주현해(여·40) 씨도 최근 슬라임 제품에서 독성물질 붕소가 발견되면서 불안에 시달리고 있다. 주 씨는 “아이가 하루 종일 맨손으로 만지고, 얼굴과 입에도 가져다 댔었는데, 건강에 악영향을 미쳤을까 너무 걱정이 된다”면서 “당장 집에 있는 슬라임은 다 버렸지만, 유치원이나 놀이터에서 친구들이 가져온 슬라임을 같이 가지고 놀거나 할까 봐 늘 불안하다”고 말했다. 서울대 보건환경연구소는 최근 슬라임 제품 30개를 조사한 결과 25개에서 붕소가 기준치를 초과해 검출됐다고 발표한 바 있다. 최근에는 아이들 콧속, 귓속 청소 등 민감한 피부에 사용되는 유아용 면봉에서 발암물질인 포름알데히드가 검출돼 논란이 일기도 했다.
소비자원에 따르면 소비자위해감시시스템(CISS)에 접수된 위해정보는 지난해 4분기 1만2797건으로 전년 동기 대비 21.6% 증가했다. 위해 현황은 유해물질 등 제품 성분으로 인한 피해뿐 아니라 이물질, 약물 성분, 물리적 충격 등 다양한 원인을 포함하고 있다. 가구 및 가구 설비가 2284건(17.9%)으로 가장 많았고, 건축, 인테리어 자재 및 작업 공구가 2위(2135건·16.7%), 가공식품이 3위(1846건·14.4%) 순이었다.
지난해 라돈 검출 침대 사태와 관련, 원자력안전위원회가 국민 안전에 대한 직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않았다며 검찰에 고발한 소비자주권시민회의는 유해물질 관련 사건들에 대한 추가적 대응을 검토하고 있다. 박순장 소비자주권시민회의 소비자감시팀장은 “문제가 발생하면 해당 물질의 국내 유입 과정에서 연관된 모든 것에 대한 전수조사가 이뤄져야 하는데, 정부에서 제대로 감시, 적발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유현진 기자 cworange@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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