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호 논설위원

“어디가 끝인지 알 수도 없는 무한한 우주 속에 살면서, 그 우주 공간을 느끼지 않는다는 게 문제다”. 한묵(1914∼2016) 화백이, 아폴로 11호로 지구를 떠난 닐 암스트롱과 에드윈 올드린 주니어가 미국 시간으로 1969년 7월 20일 인류 최초로 달에 발을 내딛는 모습을 TV로 지켜본 느낌을 표현한 말이다. 1973년엔 이런 글로도 묘사했다. ‘움직이지 않는 공간이란 종식을 의미한다. 우리가 숨 쉬는 공간은 하나의 현실이다. 또한 끝없는 움직임 그 자체이기도 하다. 나는 정지해도 현실은 흐른다. 언제 끝난다는 기약도 없이.’ 1976년에 쓴 글에선 ‘미지(未知)에 대한 끝없는 꿈! 저기 보이는 것, 그 실체가 무엇인지를 알아야 하겠다는 인간적인 욕망, 길 없는 곳을 가는 용기와 열정, 치밀한 계산, 막대한 투자, 이런 것들에 의해 지구와 달 사이에 명확한 선(線) 하나 그어진 것 아니겠는가’ 했다.

‘한국 기하(幾何) 추상의 새 지평을 연 선구자·대부·거장’ ‘생명의 근원을 우주의 에너지로 표현한 작가’ 등으로 일컬어지는 한 화백은 그런 인식을 바탕으로, 3차원인 공간에 시간의 연속 개념을 더한 4차원의 세계를 2차원의 화폭에 기하학적으로 담는 창작에 착수했다. 현란한 원색과 절제된 기하학적 구성의 절묘한 융합을 통해 ‘역동성이 소용돌이치면서 우주로 열린 무한공간’을 담아내기 시작한 것이다. 그 대표적 작품이 ‘공간’ ‘동심원’ ‘우주여행’ ‘푸른 나선’ ‘나선 N5’ ‘나선 N.19’ ‘하늘의 정’ ‘십자성의 교향’ ‘에덴의 능금’ ‘달마의 콧수염’ ‘새와 태양’ ‘상봉’ 등이다.

그는 6·25전쟁의 종군화가로도 활동한 뒤인 1955년 부임한 홍익대 교수직을 1961년에 사직할 때만 해도 구상과 추상을 오가는 작품 활동을 했다. 오로지 작품 활동에만 전념하겠다며 프랑스 파리로 간 뒤로 본격적으로 추상 미술에 몰두한 그는 동서양을 아우르면서 뛰어넘는 특유의 예술관을 구축했다. 하지만 전혀 새로운 작품들이 아니면 전시회를 열지 않겠다며, 102세로 파리에서 타계하기까지 매우 드물게 개인전을 가졌다. 그의 첫 유작전 ‘또 하나의 시(詩) 질서를 위하여’가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지난해 12월 11일 개막, 오는 3월 24일까지 이어진다. 시기별 대표작 130여 점을 통해, 따뜻하고 진취적인 그의 인간애(愛)와 우주의 기운 생동하는 에너지를 흠뻑 느낄 수 있는 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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