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하다 수차례 투옥 등 고초

상화(尙火) 이상화(李相和)는 1901년 4월 5일(음력) 대구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는 집안의 사숙(私塾)에서 한학과 신학문을 익혔고 1915년 경성중앙학교에 입학해 3년 과정을 수료했다. 1919년 기미 독립운동 당시 백기만, 이곤희, 허범 등과 함께 대구에서 학생 만세 시위를 주도했다. 1922년 ‘백조(白潮)’ 동인으로 참여, 창간호에 시 ‘말세(末世)의 희탄(稀嘆)’과 ‘단조(單調)’를 발표하며 등단했다. 이후 프랑스 유학을 꿈꾸며 도일해 동경 아테네 프랑세에서 2년 동안 수학했으나, 관동대지진 참사를 직접 겪고 귀국했다. 시인은 1925∼1926년에 가장 왕성한 작품 활동을 했으며,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는 이 시기의 대표작이다. 1927년 의열단 이종암(李鍾巖) 사건과 장진홍(張鎭弘)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파 의거, 1928년에는 독립운동자금 마련을 위한 ‘ㄱ당 사건’에 연루돼 수차례 투옥됐으며, 끊임없이 일제의 감시와 사찰에 시달렸다. 1937년 독립운동가인 친형 이상정을 만나기 위해 만주에 다녀온 뒤, 바로 구금돼 심한 고초를 겪었다. 1933년에 이어 1937년 말부터 교남학교(현 대륜고등학교)에 복직해 후학들을 양성했다. 1943년 위암 진단을 받고 투병하다가, 4월 25일 대구 계산동 자택에서 43세의 젊은 나이로 영면했다. 이상화는 독립운동에 참여한 공적이 인정돼 1977년 대통령 표창에 이어 1990년에는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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