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교감한 다정한 친구 사이와 이제 막 시작한 풋풋한 연인 사이를 각각 보는 듯했다. 지난 21일과 23일, 서울 LG아트센터와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알리나 이브라기모바(왼쪽 사진)와 세드릭 티베르기엥, 김봄소리(오른쪽)와 라파우 블레하츠의 듀오 콘서트가 그랬다. 연주자들의 외형을 음악에 비유하는 건 조금 식상하지만 이브라기모바의 세련된 감색 드레스와 김봄소리의 화려한 핑크빛 꽃무늬 드레스가 그들의 음악 스타일과 자연스럽게 포개졌다.
10년 이상 음악적 파트너로서 활동해온 바이올리니스트 이브라기모바와 피아니스트 티베르기엥은 음악적 지향점이 완전히 맞닿아 있는 듯했다. 이번 무대는 지난해 4월 영국 런던에서 시작한 브람스 바이올린 소나타 전곡 연주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두 사람의 개성과 창의성이 묻어나는 호연이었다. 브람스의 음악이 또다시 새로울 수 있다는 것이 새삼 놀라웠다. 이브라기모바가 빚어내는 음색은 그야말로 명불허전이다. 화려하게 꾸며내려 하지 않고, 직선적이고 담백하다. 도회적인 매력을 지녔다. 원전 해석에 가까운 과하지 않은 비브라토, 도취감이나 행복감과는 거리가 먼 내면을 향하는 연주를 보여준다. 대중가수로 말하자면 고음을 내지르지 않아도 목소리 톤과 분위기만으로 관객을 사로잡는 보컬 같다(물론 고음을 내지르는 테크닉도 훌륭하지만). 티베르기엥 역시 자신의 고유한 ‘맑은’ 음색을 유지하면서도 이브라기모바의 해석에 완전히 동의한 듯한 연주 스타일로 훌륭한 합을 선보였다. 긴 프레이즈를 입체적으로 연출해내는 점도 이브라기모바의 강력한 장점으로 꼽을 수 있다. 특히 2번과 3번의 서정성을 듬뿍 담고 있는 두 번째 악장에서 그의 통찰력과 창의성을 엿볼 수 있었다. 자신이 그린 큰 그림에 확신을 가지고 감정을 강요하지 않으면서도 충분히 온기를 품고 있는 연주를 두 사람은 들려줬다. 등·퇴장 내내 객석에서는 들리지 않는 대화를 나누며 시종 밝은 얼굴을 유지하던 이브라기모바와 티베르기엥은 앙코르곡으로 브람스가 진심을 다해 사랑한 클라라 슈만의 ‘3개의 로망스’ Op.22-1을 선택해 한국 관객들과의 작별에 낭만을 실었다.
바이올리니스트 김봄소리와 피아니스트 블레하츠는 전혀 다른 조화를 보여줬다. 김봄소리가 감정에 힘을 실어 적극적으로 의욕을 드러내는 한편 블레하츠는 단정하고 세련된 톤을 유지하며 자연스러운 생명력을 드러냈다. 이날의 프로그램은 모차르트 바이올린 소나타 24번과 최근 도이치 그라모폰에서 발매한 앨범의 수록곡인 포레 소나타 1번, 드뷔시 소나타 G단조, 시마노프스키 소나타 D단조.
포레가 젊은 시절 행복감을 느끼며 작곡한 첫 번째 소나타는 두 사람과 매우 잘 어울리는 선곡이었다. 블레하츠가 유려하게 펼쳐내는 아르페지오와 김봄소리의 정열적인 주제 선율이 아름답게 어우러졌다. 드뷔시의 작품에서는 바이올린 파트에 요구되는 풍부한 뉘앙스가 때때로 납작하게 전달되긴 했지만 전반적으로 밀도가 높은 연주였다. 시마노프스키의 독창적인 초기작에서 블레하츠는 매혹적인 그림을 차곡차곡 포개듯 빈틈없이 완벽한 모습을 보였다. 꿈속에서 노래하듯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2악장에서는 물에 반사된 다양한 색채를 환상적으로 펼쳐보였다. 격정적인 패시지에 흔들리는 현의 보잉을 견고하게 받치면서 꽉 찬 음향을 빚어내는 것도 블레하츠의 역할이었다.
두 개의 공연은 한국에서 이렇게 수준 높은 실내악 공연을 한 주에 몇 번씩 볼 수 있다는 뿌듯함과 함께 각각 독주회, 듀오 콘서트 순으로 두 번의 내한 공연을 치른 이브라기모바와 블레하츠의 오케스트라 협주에 대한 간절한 기다림을 남겼다.
음악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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