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만용 경제산업부 차장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주 국내 제조업계 관계자들을 만나 “제조업의 경쟁력 제고가 우리 경제 생존의 문제”라고 말한 것은 경각심을 불러일으켰다는 점에서 다행스럽지만, 한편으론 공허한 일이다. 문재인 대통령도 지난 연말 제조업의 르네상스를 말한 적이 있다. 대통령 발언 이후 친(親)정부 성향의 언론과 연구기관 등에선 제조업의 위기와 혁신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대통령의 생각을 그대로 전파한다고 보면 옳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의 해법을 살펴보면 원인 진단부터 잘못됐다. 지금의 위기는 현 정부 탓이 아니고 과거 정부의 잘못된 산업 정책 때문이라는 쪽으로 결론을 몰아간다. 대기업 중심의 정책 때문에 중소기업의 터전이 말살됐으며 숙련된 노동자를 마구잡이로 해고한 결과라는 프레임이 교묘히 깔려 있다. 일본이나 독일만큼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중소기업이 많지 않다는 점에선 옳은 말이다. 그러나 그것이 대기업의 탐욕이나 노동자 해고 탓은 아니어서 틀린 말이기도 하다.

제조업계의 말을 들어보자. 이 총재가 만난 제조업계 관계자들은 중국 기업과의 경쟁력 문제를 다수 거론했다고 한다. 기술력은 아직 우세하지만, 가격 경쟁력에서 뒤떨어진다는 얘기다. 한국수출입은행이 국내 454개 기업에 수출 애로 요인을 물었더니 절반 정도(49.8%)가 ‘개도국 저가공세’를 꼽았다. ‘원재료 가격상승’과 ‘인건비 상승’ ‘국내 기업 간 출혈경쟁’ 등 가격 경쟁력과 생산 원가에 대한 문제도 나열됐다. 이러니 국내 기업들이 생산기지를 해외로 옮기고 결국 일자리는 사라지는 것이다. 임금에 대한 부담을 낮춰주자 현대차가 광주에 공장을 짓겠다고 합의했다. 기업이란 돈을 벌 기회와 여건이 마련되면 투자하지 말라고 해도 투자하는 본능적 생명체다. 정부는 기업이 잘 성장하고 편하게 숨을 쉴 수 있는 생태계를 만들어놓으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현재 상황은 어떠한가. 제조업이 위기라고 말하면서도 정부가 앞장서 부담을 키우고 있다. 노동비용은 갈수록 올라가고, 노동계의 힘은 천하무적이다. 미국, 일본, 중국 등과 달리 자국 기업에 대한 전폭적 지원과 애정도 보이지 않는다. 국내에 주재하는 유럽 기업 CEO 65%가 “한국에서 기업 경영이 힘들어졌다”고 밝힌 점을 문 대통령은 주목해야 한다. 하지만 대통령은 신년 기자회견에서부터 “경제성장의 혜택이 소수의 상위계층과 대기업에 집중됐다” “부(富)의 양극화와 경제적 불평등이 세계에서 가장 극심한 나라가 됐다” 등 사실과 다른 편 가르기 식 발언으로 수출 제조기업과 대기업의 가치를 깎아내렸다. 대통령의 그릇된 경제관, 쏟아지는 반(反)기업 정책, 부와 오너십에 대한 사회 저변의 편견과 저항 등 악조건 속에서도 한국의 제조업체들이 글로벌에서 분투하는 것이 참 용할 뿐이다. 국내에서도 해야 할 일을 다 하고 있다. 삼성전자의 경우 영업이익의 30%를 법인세로 내며 낙수효과도 조용히 실천하고 있다. 아무리 제조 공정이 자동화됐다고 하지만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반도체 사업으로만 국내에서 각각 4만5000∼5만 명, 2만6000여 명을 직접 고용하고 있다. 이제 제조업의 경쟁력을 위해 정부가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할지 감이 올까.

mykim@
김만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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