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패션계의 거장 칼 라거펠트 1933 ~ 2019
1967년 펜디 디자이너로 주목
1983년 샤넬과 ‘운명적인 만남’
하얀 정장에 베일을 쓴 신부 등
창의적인 디자인으로 큰 반향
자신의 이름 딴 브랜드 선보여
뛰어난 직감으로 시대 이끌고
포토그래퍼·영화감독 등 활동
장발의 흰 머리를 뒤로 묶고 검은색 선글라스와 블랙앤드화이트 톤의 슈트를 입은 패션계의 상징적인 거장의 모습을 이제 볼 수 없게 됐다. 36년간 샤넬의 수석디자이너로 프리미엄 패션계를 이끌어 온 칼 라거펠트가 지난 19일 85세를 일기로 프랑스 파리에서 별세하면서 전 세계가 애도를 표하고 있다.
그의 사망 직후 샤넬 하우스는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애도를 표했다. 알랭 베르트하이머 샤넬 CEO는 “칼 라거펠트는 그의 창의성, 관대함, 뛰어난 직감으로 시대를 앞서갔으며, 샤넬이 전 세계적으로 성공하는 데에 크게 기여했다”면서 “오늘 친구를 잃었을 뿐 아니라, 1980년대 브랜드를 재발견하고자 전권을 위임했던 창의적인 천재를 잃었다”고 말했다. 브루노 파블로브스키 샤넬 패션 부문 사장도 “칼 라거펠트는 샤넬의 역사에 발자취를 남겼다. 우리는 칼 라거펠트가 걸었던 길을 따라가며 그의 말처럼 현재에 충실하면서 미래를 창조해 나가야 한다”고 밝혔다.
디자이너뿐 아니라 포토그래퍼, 아티스트, 일러스트레이터, 단편영화 감독 등 패션 안에서 다양한 시도를 한 라거펠트는 샤넬 외에도 펜디, 끌로에, 발렌티노, 그리고 자신의 이름을 딴 칼 라거펠트 등 다양한 브랜드에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1933년 독일 함부르크에서 태어난 라거펠트는 정규 패션 교육을 받지 않고 10대 때 프랑스 파리로 왔다. 그 후 1954년 국제양모 디자인대회에서 여성용 코트로 상을 받으면서 이브 생로랑과 친분을 쌓았고, 발망에서 보조디자이너로 일했다. 이후 1960년대 이탈리아 로마에서 미술사를 공부하기도 했으며 1967년 펜디에서 디자이너로서 패션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그는 다양한 혁신적인 시도를 통해 50여 년간 펜디에서 100여 회가 넘는 컬렉션을 진행해왔다.
그리고 1983년 그의 운명을 영원한 패션계의 아이콘으로 만들어줄 샤넬과 손잡게 된다. 라거펠트는 샤넬 오트쿠튀르 무대 데뷔와 동시에 ‘샤넬의 환생’이라는 호평을 받았다. 샤넬의 창업자인 가브리엘 샤넬 사망 후 경영난에 빠진 샤넬에 라거펠트가 등장하면서 샤넬의 전통적인 디자인을 재해석, 샤넬의 정체성을 재확립했다. 라거펠트는 “나의 일은 가브리엘 샤넬이 한 일이 아니라 했을 일을 하는 것이다. 샤넬은 어디에든 적용할 수 있는 하나의 아이디어”라고 말해왔다.
가브리엘 샤넬의 트위드 재킷, 퀼팅 백, 진주목걸이, 리틀 블랙드레스 등을 시대에 맞게 다시 디자인해 샤넬만의 색을 분명히 했다. 샤넬의 상징적인 트위드 정장에 다양한 색을 더하고 화려한 액세서리를 매치하거나 퀼팅 된 미니드레스에 볼드한 진주목걸이를 초커로 여러 번 두른 패션, 웨딩드레스가 아닌 하얀 정장에 베일을 쓴 신부 등의 다양한 디자인 시도가 있었다. 데님과 슈트를 결합하고 최근에는 비닐 소재를 패션계의 트렌드로 만드는 등 늘 큰 반응을 이끌어냈다.
다양한 예술 분야에 관심이 많아 샤넬은 1987년부터 패션 브랜드 캠페인도 성공적으로 진행했다. 그의 샤넬 컬렉션은 매회 색다른 시도로 주목을 받았다. 크루즈 컬렉션을 실제로 크루즈선 옆에서 진행하거나 해변을 그대로 재현한 무대를 꾸몄으며, 아예 해변에 런웨이를 구성하기도 했다.
한편 샤넬은 가브리엘 샤넬과 칼 라거펠트를 이어받을 수 있도록 라거펠트와 30년 이상 협력해 온 버지니 비아르 샤넬 패션 스튜디오 디렉터에게 크리에이티브 업무를 모두 위임했다.
유현진 기자 cworange@munhwa.com
주요뉴스
시리즈
이슈NOW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