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일본의 고질병인 ‘독도 망언’이 재발했을 때, 국회에서 초청한 좌담회에서 독도에 관한 역사·국제법 지식이 빈약한 국회의원들을 향해 “공부 좀 하라!”고 ‘준엄하게 꾸짖었다’(?)는 이야기가 후학들에게 전설처럼 전해지는 화양(禾陽) 신용하(愼鏞廈) 서울대 명예교수.
그가 2003년 서울대에서 정년을 맞았을 때 59권의 저서와 249편의 논문을 남겼었다. 지금은? 저서는 67권으로 늘었고, 논문도 290편이 넘는다. ‘신용하 저작집’의 이름으로 서울대에서 간행해온 저서는 50권을 훨씬 넘었다. 2003년 회갑을 기념해 후학들이 쓴 글에는 스승을 “거대한 학문의 산을 쌓아 올린 대학자”라고 부르면서 “이 산을 쌓는 작업은 끝난 것이 아니어서 최종 단계를 말할 수 없다”고 적고 있는데 예상이 맞은 셈이다. 그에게 요즘 ‘근황이 어떠시냐’고 물으면, “책보고 연구하는 것이 일과인데 근황이랄 게 있나요?”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신 명예교수의 호(號)는 고향에서 따온 것이다. 1937년 12월 제주시 동쪽 끝에 있는 화북(禾北)이라는 동네에서 태어났는데, 북(北)과 양(陽)은 고대 한문에서 같은 의미로, ‘禾陽’으로 지었다고 한다. 초등학교 1학년 때, 해방을 맞기 직전에 제주도가 미군과 일본군의 격전지가 된다며 해안 주민에게 소개령이 내려졌다. 그의 집안은 지리산 아래 운봉을 거쳐서 계룡산 아래에 있는 신도안으로 피란을 와서 한국전쟁을 겪었다. 서울대에 입학한 이후로 서울에 정착했다. 대학생 때 맞이한 4·19의 기억에 대해 그는 “경무대 앞에서 죽을 뻔했던 적이 있어요”라고 회고한다. 그때 그의 은사인 서울대 사회학과 최문환 교수가 “제군은 냉정한 연구보다 정열이 강하다”면서 “그 정열을 일생을 걸고 학문에 쏟아라”라고 했던 말에 마음을 다잡고 학자의 길로 들어섰다. 일제강점과 한국전쟁, 4·19는 그의 학문의 방향을 정하는데 결정적 경험으로 볼 수 있다.
“나의 학문연구의 관심사는 일관되게 ‘민족문제’에 있었어요. 소년기에 경험한 식민지와 전쟁 등 우리 민족의 고난에 관한 의문을 풀고 싶어 사회학과에 진학했습니다.”
그는 사회학자지만 독립운동사를 비롯한 근대사 등 역사 연구 쪽에 이름이 더 나 있다. 신 명예교수는 “사회학적 현재는 역사 속의 현재”라고 말한다. 그는 사회학의 창시자인 콩트가 했던 “역사가 없으면 사회학도 없다”는 말을 인용하며 “사회학의 진정한 방법은 ‘역사적 성찰’ 빼고는 성립할 수 없다”고 강조한다.
그는 한국사회사, 역사사회학 분야에 큰 족적을 남겼고, 특히 독립협회, 개화사상, 독립운동사, 일제토지조사, 3·1운동, 독도 연구 등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할 업적을 쌓았다. ‘독립협회 연구’(1976)와 ‘3·1운동의 주체성과 민족자결주의’(1977), ‘조선토지조사사업연구’(1979) 등 그의 수많은 연구업적은 해당 분야 연구의 획을 그었고, 사실상 후학들이 그의 성과를 딛지 않고서는 더 나갈 수 없었다. 정년 이후에는 고조선 연구에 힘을 기울이면서 문명사의 새 패러다임을 구상하는 데까지 관심을 확장하고 있다. 지난해 출간한 ‘고조선 문명의 사회사’는 그 시작이다. 요즘도 “아침이면 서울대 연구실이나 학술원으로 출근해 연구를 이어가고 있다”는 그는 “많이 피웠던 담배는 이전에 끊었고, 술은 몸에 맞지 않아 하지 않았다. 건강에는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서울대 사회학과 졸업 △서울대 대학원 경제학석사·사회학박사 △미국 하버드대 객원교수 △서울대 사회과학대 사회학과 교수 △서울대 사회과학대 학장 △한국사회학회 회장 △한국사회사학회 회장 △독도학회 회장 △한양대 석좌교수 △이화여대 이화학술원 석좌교수 역임 △현재 서울대 명예교수, 울산대 석좌교수, 대한민국학술원 회원
엄주엽 선임기자 ejyeob@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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