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트럼프의 국제 통상질서 위협
철강·픽업트럭 등 한국 큰 손실
중국 압박엔 미국內 지지 높아
美의 北核 대책은 정밀성 결여
文정부의 대북 정책도 악영향
안보와 자유민주통일 견지해야
2년 전, 미국 대선 유세에서 민주당 후보보다 더 원색적인 반세계화와 중상주의적 자국 시장 보호를 외친 쪽이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 후보여서 어리둥절했다. 지금 트럼프의 통상정책은 기존의 국제 통상 질서를 크게 흔들고 있다. 세계무역기구(WTO)의 다자간 협상 기능은 거의 정지됐고, 분쟁 해결마저도 기능 상실 위기를 맞고 있다. 환태평양무역협정(TPP) 탈퇴, 기후변화협약 탈퇴에 이어, 이전 행정부가 체결한 자유무역협정(FTA)을 폐기하겠다고 압박해 결국 수정했다. 철강 수입이 과도해 안보에 해가 된다고 1962년의 무역확장법 제232조를 내세워 고관세 부과로 위협했다. 한국은 예년의 70%로 철강 수출 쿼터를 수용하고 동시에 한·미 FTA 개정 협상에서도 상당한 양보를 하고서야 관세 25%를 피했다.
수출 물량이 쿼터로 묶여 있는 우리 철강업계 속이 편할 리가 없고, 또 미국 픽업트럭 시장 진출을 꾀하던 국내 자동차 업계도 허탈해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5월 제232조를 또 들고나와 이번에는 수입 자동차가 미국 안보를 위태롭게 하는지 조사토록 지시했고, 상무부는 9개월간의 조사 끝에 안보에 위해가 된다고 지난 17일 보고서를 제출했다. 그 상세 내용은 상당 기간 공개하지 않으면서 미국으로 자동차를 수출하는 멕시코, 캐나다, 유럽연합(EU·특히 독일), 일본, 한국 등과 향후 협상에서 압박 수단으로 사용할 것으로 예견된다. 이런 트럼프 통상정책에 대해서는 미국에서도 학계·업계·의회에서 반대 목소리가 높고, 교역 상대국들도 불만과 반대가 팽배하다.
그런데 지난해 3월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의 경제적 침략에 대응한 행정명령’을 발동한 이후 미·중 간에 전개된 관세 때리기와 지금 진행 중인 중국과 협상에서 나타난 트럼프 대통령의 중국 다루기에 대해서는 미국 안팎에서 넓은 지지가 있어 보인다. 사실 이 싸움은 표면상 통상 문제로 보이지만, 이면에는 향후 세계 질서의 주도권을 노린 패권 경쟁이 깔려 있다. 중국은 아직 미국의 맞상대가 되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협상 목표는, 단기적으로 미국의 대중국 무역적자 축소를 위한 미국 상품 수입 확대, 장기적으로 중국의 외국 투자 관련 법제 및 관행 개선과 공기업 및 국가 보조금 문제 개선, 여기에 더해 합의 사항 이행을 보장하는 메커니즘 설정 등으로 구분해 정밀한 협상을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3월 이후 트럼프 대통령의 지속적이고 일관된 압박과 이번 협상에 나선 미 무역대표의 통상전문가다운, 잘 짜인 협상 구도로 볼 때 미측으로서는 상당한 진전 내지 성과를 이뤄낼 것으로 보인다. 국내적으로 로버트 뮬러 특검의 수사, 국경 장벽 문제와 이 때문에 발동한 국가 비상사태에 대한 정치권의 반발 등 2020년 재선에 나서야 할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국내보다는 국외에서 치적을 쌓아 가야 할 상황이어서 각국에 대한 통상 압박으로 무역적자 개선에 노력하는 한편, 최대 교역국인 중국과 유리한 합의를 도출하는 것은 호재가 될 것이다.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이 북핵 문제를 다루는 것을 지켜보면 앞서 말한 집요하다 할 정도의 일관된 압박과 정밀한 협상 설계가 있는지 의구심이 든다. 집권 초기에는 분노와 화염으로 압박하더니, 어느덧 김정은과 사랑에 빠졌다고 말하니, 이 정도 인식의 기복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황당하기까지 했다. 동맹 관계도 돈으로 따져보는 그에게는 달러와 센트가 적시되는 무역 적자는 중요하고, 북한의 핵무기는 미국 본토에만 오지 않고 다른 곳으로 확산만 되지 않는다면 크게 상관없다는 것인지 답답한 심정이다.
일이 이렇게 굴러가는 것은, 그간 우리 정부가 북핵에 대해 취해온 입장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북핵의 직접 당사자이며 제1의 잠재적 피해자로서 다시 한 번 우리 입장과 역할을 분명히 해야 한다. 당장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고, 길게는 자유민주주의 체제 아래 통일 코리아를 이루겠다는 것이 북한과 미국과의 협상에서 지켜야 할 우리의 기조가 돼야 한다. 이 기조를 바탕으로 한다면 북핵은 당연히 폐기돼야 하고, 그때까지 우리에게는 북핵을 상쇄할 충분한 무력이 유지돼야 한다. 하노이 미·북 회담에서도 과연 이 기조가 견지됐을까. 정상회담은 일단 개최되면 실패라고 발표하는 일은 거의 없다. 어떻게 포장하든 내용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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